아래 사설은 범우사에서 출간한 김경아 편저의
'강산제 심청가' 중에서 사설만 뽑은 것입니다.
고 춘전 성우향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소리를
김경아 선생님이 다듬어 출간한 책입니다.
사설에 각주를 달아 어려운 대목의 이해를 도왔고,
소리를 배우는 분들을 위하여 소리의 마디를 표시했습니다.
또한 제2부에서는 차용된 한시를 실어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강산제 심청가
[아니리]
송나라 원풍 말년에 황주 도화동 사는 봉사 한 사람이 있난디,
성은 심이오, 이름은 학규였다.
누대명문거족으로 명성이 자자터니, 가운이 불행하여 삼십 전 안맹이라,
낙수청운에 발자취 끊어지고 일가친척 멀어져 뉘라서 받드리오?
그러나, 그의 아내 곽씨 부인이 있난디,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르난 것 전혀 없고,
백집사가감이라 곽씨 부인이 몸을 버려 품을 팔 제,
[단중모리]
삯바느질 관대 도복 행의 창의 직령이며,
협수 쾌자 중치막과, 남녀의복의 잔누비질 상침질 꺽음질과 외올뜨기 꾓담이며
고두 누비 솔 올리기, 망건 꾸미기 갓끈 접기,
배자 토시 버선 행전 포대 허리띠 다님 줌치 쌈지 약낭 필낭 휘양 볼끼 복건 풍차이며,
천의 주의 갖은 금침 베갯모 쌍원앙 수도 놓고,
오색 모사 각대 흉배 학 기리기,
궁초 공단 수주 선주 낭릉 갑사 운문 토주 갑주 분주 표주 명주 생초 통견 조포 북포 황저포 춘포 문포 계추리며
삼베 백저 극상 세목 삯을 받고 맡아 짜기,
청황 적백 침향 오색 각색으로 다 염색허기,
초상난 집 원삼 제복, 혼장대사 음식 숙정, 갖은 제편 중계 약과,
박산 과잘 다식 정과 냉면 화채 신선로며,
각각 찬수 약주 빚기 수파련 봉오림과 배상 허기 고임질을 잠시도 놓지 않고
수족이 다 진토록, 품 팔아 모일 적에 푼 모아 돈 짓고 돈 모아
냥 만들어 냥을 지어 관돈 되니,
일수 체계 장리변에 이웃집 사람들께 착실한 곳 빚을 주어
실수 없이 받아들여 춘추시향에 봉제사,
앞 못 보는 가장 공경 시종이 여일허니, 상하 인리의 사람들,
[아니리]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뉘 아니 칭찬허리.
하로난 심 봉사 먼눈을 뻔덕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전생에 무삼 죄로 이생에 나를 만나 날 이렇게 공대허니
나는 편타 할지라도 마누라 고생살이 도리어 불안하오.
그러나 어쩔 것이오. 사는 대로 살아가되 오늘은 지원 할 일이 있소.
우리 연장 사십이나 슬하 일점혈육 없어 조상 향화 끊게 되고,
우리 내외 사후라도 초종장사 소대기며, 연년이 오난 기일,
어느 뉘라서 받들리까. 우리가 사십 후에라도 명산대찰 신공이라도 드려,
남녀 간에 낳어 보면 평생 한을 풀겠구만.”
곽씨 부인 이 말 듣고 공손히 대답허되
[창조]
“가군의 정대하신 마음 몰라 발설치 못하였더니,
[아니리]
지금 말씀 그리허오니 지극 신공하오리다.”
[창조]
“옛글에 허였으되 불효삼천 무후위대라 하였으니
[아니리]
품을 팔고 뼈를 간들 무슨 일을 못 하오리까.”
“거 정성껏 빌어 보오.”
[중모리]
곽씨 부인 그날부터 품 팔아 모인 제물 왼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대찰 영신당과 고묘 총사 석왕사며,
석불 미륵 서 계신 디 허유허유 다니시며,
가사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십왕 불공,
칠성불공 나한 불공, 가지가지 다 하오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든 남기 꺾어지랴?
갑자 사월 초파일야, 한 꿈을 얻은지라.
서기반공 하고 오색 채운 영롱터니, 하날의 선녀 하나 옥경으로 내려올 제,
머리 위에 화관이요 몸에난 원삼이라.
계화 가지 손에 들고 부인 전 배례허고,
곁에 와 앉는 거동 뚜렷한 달 정신이 산상에 솟아난 듯,
남해관음이 해중에 다시 온 듯 심신이 황홀하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의 고운 태도, 호치를 반개허고 쇄옥성으로 말을 헌다.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반도 진상 가는 길에,
옥진 비자 잠깐 만나 수어 수작을 허옵다가,
시가 조끔 늦은 고로 상제께 득죄허여, 인간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몰랐더니,
태상노군 후토부인, 제불 보살 석가님이 댁으로 지시허여 이리 찾아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 안에 달려들어 놀래어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아니리]
양주 몽사 의논허니, 내외 꿈이 꼭 같은지라. 그달부터 태기가 있난디,
[단중모리]
석부정부좌, 할부정불식, 이불청음성 목불시악색 좌불중석 십 삭일이 찬 연후에
[중중모리]
하루난 해복 기미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심 봉사 좋아라고, 일변은 반갑고 일변은 겁을 내어 밖으로 우르르 나가더니,
짚 한 줌 쑥쑥 추려 정화수 새 소반에 받쳐 놓고,
좌불안석 급한 마음, 순산 허기를 기다릴 제,
향취가 진동허고, 채운이 두르더니 혼미 중 탄생하니,
선인 옥녀 딸이라.
[아니리]
곽씨 부인 정신 차려, 순산은 하였으나,
“남녀 간에 무엇이오?”
심 봉사가 눈 밝은 사람 같고 보면,
아이를 낳을 때 분간을 하련만은 앞 못 보는 맹성이라 거 보아 알 수가 있나,
아이를 만져보려 헐 제, 꼭 유장꾼 종장 조려 내려가듯 허겄다.
“자 어디 보자, 어디, 어이쿠.”
거침새 없이 미끈덕 넘어가니,
“아마도 마누라 같은 사람 났는가 보오.”
[창조]
“만득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니 원통하오.”
[아니리]
“여보 마누라, 그런 말 마오. 아들도 잘못 두면, 욕급선영 하는 것이고
딸도 잘만 두면 아들 주고 바꾸리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 범절 잘 가르치고 침선 방적 잘 시켜,
요조숙녀 군자호구 좋은 배필, 부귀다남하고 보면 외손봉사는 못하리까?
그런 말 마오.”
심 봉사 좋아라고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에 받쳐놓고 비난디,
이런 사람 같으면 오죽 조용히 빌련마는, 앞 못 보는 맹인이라,
팩성질이 있든가 보더라.
삼신제왕님이 깜짝 놀라 삼 천 구만리나 도망가게 빌어 보는디,
[중중모리]
“삼십삼천 도솔천 승불 제석 삼신제왕님네 화위동심 하여, 다 굽어보옵소서.
사십 후에 낳은 자식, 한 달 두 달 이슬 맺어,
석 달의 피 어리고, 넉 달의 인형 삼겨, 다섯 달 오포 나고, 여섯 달 육정 삼겨,
일곱 달 칠규 열려, 여덟 달에 팔 만 사 천 털이 나고, 아홉 달에 구규 열려,
열 달 만의 찬김 받어, 금강문 해탈문 고이 열어 순산허니,
삼신님 넓으신 덕택 백골난망 잊으리까?
다만 독녀 딸이오나, 동방삭의 명을 주고 태임의 덕행이며 대순 증자 효행이며,
기량의 처 절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곽분양의 복을 주어,
외 붇듯 달 붇듯 잔병 없이 잘 가꾸어 일취월장허게 하옵소서.”
[아니리]
그때의 곽씨 부인은 산후 손데 없이 찬물에 빨래를 하였드니,
뜻밖에 산후별증이 일어나는디, 전신을 꼼짝달싹 못하고,
[창조]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머리야,
사대삭신 육 천 마디 아니 아픈 데가 전혀 없네.”
[아니리]
곽씨 부인 생각허니, 아무리 허여도 살길이 없는지라.
[진양조]
가군의 손길 잡고, 유언허고 죽더니라.
“아이고 여보, 가장님, 내 평생 먹은 마음,
앞 못 보는 가장님을, 해로백년 봉양타가, 불행만세 당하오면,
초종장사 마친 후에 뒤를 좇아 죽자 터니,
천명이 이뿐인지 인연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앞 어둔 우리 가장 헌옷 뉘라 지어주며, 조석공대 뉘라 하리. 사고무친 혈혈단신 의탁할 곳 바이없어 지팽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다니시다, 구렁에도 떨어지고 돌에 채여 넘어져서,
신세자탄 우는 모양 내 눈으로 본 듯허고,
기한을 못 이기어 가가문전 다니시며, 밥 좀 주오,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난 듯, 나 죽은 혼백인들 차마 어이 듣고 보리,
명산대찰 신공드려,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모르고 죽단 말이 웬 말이오.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멀고 먼 황천길을 눈물 겨워 어이 가며, 앞이 막혀 어이 가리.
여보시오, 가장님. 뒷마을 귀덕 어미, 정친하게 지냈으니,
저 자식을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허면, 괄세 아니 허오리다.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제 발로 걸커들랑 앞을 세워 길을 물어
내 묘 앞에 찾아와겨 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분묘로다, 가르쳐,
모녀 상면을 허게 허오. 할 말은 무궁허나 숨이 가퍼 못 하겄소.”
[아니리]
앞 어둔 가장에게 어린 자식 제쳐두고 유언하고 돌아눈다.
[중모리]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저 아이 이름일랑 청이라고 불러주오.
저 주랴 지은 굴레, 오색비단 금자 박어,
진옥판 홍사 수실, 진주 느림 부전 달아 신행 함에 넣었으니,그것도 씌어주고,
나라에서 하사하신, 크나큰 은돈 한 푼, 수복강녕 태평안락 양편에 새겼기로,
고운 홍전 괴불줌치,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채여주고,
나 찌던 옥지환이 손에 적어 못 찌기로 농 안에 두었으니, 그것도 찌여주오.”
한숨 쉬고 돌아누워 어린아이를 끌어다 낯을 한테 문지르며,
“아이고, 내 새끼야. 천지도 무심허고 귀신도 야속허지,
네가 진작 삼기거나, 내가 조끔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이없는 궁천지통을 널로 허여 품게 되니,
죽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 간의 무슨 죄냐. 내 젖 망종 많이 먹어라.”
손길을 스르르 놓고, 한숨 기워 부는 바람 삽삽비풍 되어 불고,
눈물 맺어 오는 비는 소소세우 되었어라.
포깍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는구나.
[아니리]
그때의 심 봉사는 아무런 줄 모르고
“여보 마누라. 사람이 병든다고 다 죽을 리가 있겠소.
나 의가에 가서 약지어 올 터이니, 부디 안심허오.”
심 봉사 급한 마음에 의가에 가서 약을 지어 돌아와,
수일승전반에 얼른 짜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여보 마누라, 일어나 약 자시오.
이 약 자시면 즉효허리라 허옵디다.”
아무리 부른들 죽은 사람이 대답이 있으리오.
“어! 식음을 전폐터니 기허허여 이러는가?”
양팔에 힘을 주어 일으키려 만져보니,
허리는 뻣뻣하고 수족은 늘어져 콧궁기 찬김 나니,
그제야 죽은 줄 알고 심 봉사가 뛰고 미치는디,
설움이라는 게 어지간해야 울음도 울고 눈물도 나는 것이지,
사뭇 아람이 차노면 울도 못허고 뛰고 미치는 법이었다.
[중중모리]
심 봉사 기가 막혀 섰다 절컥 주잕지며 들었던 약그릇을 방바닥에다 내던지고, “아이고, 마누라. 허허, 이것이 웬일이요?
약 지러 갔다 오니 그새에 죽었네.
약능활인이요, 병불능살인이라더니, 약이 도리어 원수로다.
죽을 줄 알았으면 약 지러도 가지 말고 마누라 곁에 앉어,
서천서역 연화세계 환생차로 진언 외고 염불이나 허여 줄걸
절통하고 분하여라.”
가삼 쾅쾅 뚜다려,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마누라, 저걸 두고 죽단 말이요?
동지섣달 설한풍에 무얼 입혀 길러내며 뉘 젖 먹여 길러낼거나.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마누라 한번 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어느 시절에 오랴나.
삼천벽도 요지연의 서왕모를 따라가, 황릉묘 이비 함께 회포 말을 허러가,
천상에 죄를 짓고, 공을 닦고 올라가. 나는 뉘를 따라 갈거나.”
밖으로 우루루 나가더니 마당에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동네사람들!
차소위 계집 추는 놈 미친놈이라 허였으되,
현철하고 얌전한 우리 곽씨가 죽었소!”
방으로 더듬더듬 더듬더듬 들어가 마누라 목을 덥석 안고 낯을 대고 문지르며, “아이고, 마누라,
재담으로 이러나, 농담으로 이러나. 실담으로 이러는가.
이 지경이 웬일이여.
내 신세는 어쩌라고 이 죽엄이 웬일이오!”
[아니리]
동리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보시오, 봉사님, 사자는 불가부생이라,
죽은 사람 따라 가면 어린 자식 어쩌시랴오?”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동리 남녀노소 모아들어 초종지례를 마치난디,
곽씨 시체 소방상 대뜰 위에 덩그렇게 올려놓고,
명정 공포 삽선 등물 좌우로 갈라 세우고 거리제를 지내는디,
[창조]
영이기가 왕즉유택 재진견례 영결종천 관음보살.
춘초는 연년이 푸르건만 왕손도 귀불귀라. 관음보살.
[중모리]
요령은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허 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이로구나.
어 넘차 너화너.
새벽 종다리 쉰 길 떠 서천 명월이 다 밝아온다.
어 넘차 너화너,
인제 가면 언제나 올라요 오시난 날을 일러 주오.
어너 어허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물가 가재는 뒷걸음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디,
원산 호랑이 술주정을 허네.
어 넘차 너화너.
인경 치고 파루를 치니 각댁 하님이 개문을 헌다.
어 넘차 너화너.
어너 어너 어허너 어허너 어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그때의 심 봉사는 어린 아이를 강보에 싸 귀덕 어미에게 맡겨두고,
곧 죽어도 굴관제복 지어 입고, 상부 뒤채를 검쳐 잡고,
“아이고 마누라,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나허고 가세, 나허고 가세!
산첩첩 노망망에 다리가 아퍼서 어이 가며,
일침침 운명명에 주점이 없어서 어이 가리.
부창부수 우리 정분 날과 함께 가사이다.”
상여는 그대로 나가며 어허 넘차 너화너.
[중중모리]
어너 어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여보소 친구네들, 세상사가 허망허네.
자네가 죽어도 이 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 팔자로다.
어넘차 너화너.
현철허신 곽씨 부인 불쌍허게 떠나셨네.
어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어,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아니리]
산천에 올라가 깊이 파고 안장 후에 평토제를 지낼 적에,
심 봉사가 이십 후 안맹이라 배운 것이 있어 그전 글이 문장이었든가 보더라.
축문을 지어 신세 자탄으로 독축을 허는디.
[창조]
“차호부인, 차호부인, 요차요조숙녀혜여,
상불고이고인이라, 기백년이해로터니 홀연몰혜언귀오.
유치자이영서허니, 이걸 어이 길러 내며,
누삼삼이첨금혜여, 지는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이소혼혜여, 살길이 전이 없네.
[진양조]
주과포혜 박전허나, 만사를 모두 잊고 많이 먹고 돌아가오.”
무덤을 검쳐 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 들어가 송죽으로 울을 삼고 두견이 벗이 되어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허리.
노이무처 환부라니, 사궁 중에 첫머리요,
아들 없고 눈 못 보니, 몇 가지 궁이 되단 말가?”
무덤을 검쳐 안고 내리둥굴 치둥굴며, 함께 죽기로만 작정을 헌다.
[아니리]
동네사람들이 만류하며,
“여보시오 봉사님,
죽은 사람 따라가면, 어린 자식 어쩌랴오. 어서어서 가옵시다.”
[창조]
심 봉사 하릴없어, 동인들께 붙들리어
[중모리]
집이라고 들어오니, 부엌은 적막허고, 방안은 텅 비었난디.
심 봉사 실성발광 미치는디,
얼싸덜싸 춤도 추고, 허허, 웃어도 보며, 지팽막대 흩어 짚고 이웃집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혹 우리 마누라 여기 안 왔소?”
아무리 부르고 다녀도 종적이 바이없네.
집으로 돌아와서 부엌을 굽어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방으로 들어가서 쑥내 향내 피워 놓고 마누라를 부르면서 통곡으로 울음 울 제.
그때의 귀덕 어미 아이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 아이를 보시드래도, 그만 진정 하시오.”
“허허, 귀덕 이넨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 어미는 건너가고, 아이 안고 자탄할 제.
강보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심 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새끼야, 너의 모친 먼 디 갔다.
낙양동촌이화정에 숙 낭자를 보러 갔다.
죽상체루 오신 혼백 이비 부인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울음을 우느냐?
강목수생이로구나. 내가 젖을 두고 안 주느냐,
그저 응아, 응아, 응아!”
심 봉사 화가 나서 안었던 아이를 방바닥에다 밀어 놓고
“죽거라, 썩 죽어라!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아 그 초칠 안에 어미를 잃어야?
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으면 너도 못 살리라.”
아이를 도로 안고,
“아가 우지마라,
어서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 먹여주마.
우지마라 내 새끼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린아이는 기진허고, 어둔 눈은 더욱 침침하여 날 새기를 기다릴 제,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적에,
한 품에 아이를 안고 한손에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우물가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초칠 안에 어미 잃고 기허허여 죽게 되니,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우물가에 오신 부인 철석인들 아니 주며, 도척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기가 있고, 저 집에도 아기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 말고 자주자주 다니시면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허허, 고맙소, 수복강녕 허옵소서.”
이 집 저 집 다닐 적에
삼베길쌈 허노라고 흐히 하히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 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기음 매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아가서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 시냇가에 빨래하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아가서,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 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 되씩 떠 주며
“맘 쌀이나 허여주오.”
심 봉사 좋아라고
“어허 고맙소. 수복강녕허옵소서.”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 올 제, 어덕 밑에 쭈푸려 앉어 아이를 어룬다. “아이고, 내 딸 배부르다. 배가 뺑뺑하구나!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하면 부귀다남을 한다더라.
너도 어서어서 자라나서,
너의 모친 닮아 현철허고, 얌전허여 애비 귀염을 보이어라.
[단중모리]
둥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백미 닷 섬에 뉘 하나, 열 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이야.
어덕 밑에 귀남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이리 보아도 내 딸, 저리 보아도 내 딸.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엄쥐엄,
자깡자깡 섬마 둥둥 내 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하나 얻어다,
두룸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감은 새앙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한쪽이 남았기에 한쪽은 내가 먹고 한쪽은 너를 주마,
우루루루루루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아이 안고 집으로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 차로 나갈 적에,
[단중모리]
삼베 전대 외동 지어 왼 어깨 들어 메고, 동냥 차로 나간다.
여름이면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동냥,
어린아이 맘죽 차로 쌀 얻고 감을 사, 허유허유 돌아올 제.
그때의 심청이난, 하늘의 도움이라 일취월장 자라날 제, 십여 세가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의 공양사를 의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이 아니냐.
[아니리]
하로난 심청이 부친 전에 단정히 앉아,
“아버지!”
“왜야?”
“아버지 오날부터는 아무 데도 가지 마옵시고 집에 가만히 계시오면,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하오리다.”
“여보아라, 청아.
내 아무리 곤궁헌들 무남독녀 너 하나를 밥을 빈단 말이 될 말이냐?
워라 워라, 그런 말 마라.”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난 현인으로, 백리에 부미 허고,
순우의 딸 제영이난 낙양옥에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허고,
말 못하는 까마귀도 공림 저문 날에 반포보은을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만 못하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할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디,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여봐라, 청아. 너 이제 허는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
너의 어머니 뱃속에서 배워가지고 나왔느냐,
네 성의가 그럴진대, 한 두어 집만 다녀오너라.”
[늦은 중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밥 빌러 나갈 적에,
헌 베 중의 다님 매고 말만 남은 헌 초마에,
깃 없난 헌 저고리, 목만 남은 질 보선에, 청목 휘양 눌러 쓰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맞은 병신처럼 옆걸음 쳐 나갈 적에,
원산의 해 비치고, 건너 마을 연기 일 제,
주적주적 건너가 부엌문전 다다르며 애근이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저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 먹여, 요만큼이나 자랐으나,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구완헐 길 전혀 없어 밥 빌러 왔사오니
한 술씩만 덜 잡숫고, 십시일반 주옵시면,
치운 방 우리 부친 구완을 허겄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슬퍼허리.
그릇 밥 김치, 장을 애끼잖고 후히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저 혼자만 먹사리까, 부친 전에 가 먹겄내다.”
한두 집이 족헌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 올 제,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원산의 해가 조금 비쳤더니
벌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이 되었구나.”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에 들어서며
“아버지, 칩긴들 아니 허며 시장킨들 안 허리까.
더운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 밥이요, 저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갈치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 봉사 기가 막혀 딸의 손을 부여다 입에 대고 훅, 훅, 훅 불며
“아이고, 내 딸 칩다. 불 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냐.
너의 모친이 살았으면, 이런 일이 있겠느냐?”
[아니리]
세월이 여류허여, 심청 나이 벌써 십오 세가 되었구나.
효행이 출천하고 얼굴이 일색이라, 이렇단 소문이 원근에 낭자허니,
하로난 무릉촌 장 승상 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구나.
심청이 부친 전 여짜오되,
“아버지.”
“왜야?”
“무릉촌, 장 승상 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사오니 어찌 하오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이 애 청아, 그 댁 부인과 너의 모친과는 별친하게 지내었다.
네가 진즉 가서 뵈올 것을 이제 청하도록 있었구나.
어서 건너가되, 아미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허고 수이 다녀오너라.” 부친의 허락을 받고,
[진양조]
시비따라 건너간다.
무릉촌을 당도허여, 승상 댁을 찾어가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정하의 섰난 반송 광풍이 건듯 불면, 노룡이 굼니난 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취 일어나서 나래를 땅의다 지르르르르 끌며,
뚜루루루 낄룩 징검징검 알연성이 기이허구나.
[중중모리]
계상의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은지라,
“무릉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개화로다.
니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 일찍 기세허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 가 미환 허고 어린 자식 손자 없어,
적적한 빈 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는 것 고서로다.
네 신세를 생각허면 양반의 후예로 저렇듯 곤궁허니,
나의 수양딸이 되어 여공도 숭상허고,
문필도 학습허여 말년 재미를 볼까 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아니리]
심청이 여짜오되,
“모친 별세한 후, 앞 못 보는 아버지는 저를 아들 겸 믿사옵고,
저는 부친을 모친 겸 믿사오니, 분명 대답 못하겠내다.”
“기특타, 내 딸이야.
나는 너를 딸로 아니, 너는 나를 어미로 알아다오.”
심청이 여짜오되,
[창조]
“치운 방 우리 부친 저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겼네다.”
[아니리]
부인이 허락허고, 비단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 함께 보내겄다.
그때의 심 봉사는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한기 들 제,
먼 데 절 쇠북 소리, 날 저문 줄 짐작하고,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어찌하여 못 오느냐,
부인이 잡고 만류허느냐, 길에 오다 욕을 보나?
백설은 펼펄 흩날린디, 후후 불고 앉었느냐?”
새만 푸루루루, 날아들어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낙엽만 버썩, 떨어져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아무리 부르고 기다려도 적막공산에 인적이 끊쳤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놈의 노릇을 어찌를 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자진모리]
“이래서는 못 쓰겄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가면서 심청을 부르난디
“청아, 오느냐? 어찌허여 못 오느냐?”
그때의 심 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 가만히 앉아 먹어노니,
도랑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 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나가다가,
길 넘어 개천 물에 한 발 자칫 미끄러져 거꾸로 물에가 풍!
“아이고, 사람 살려!
어푸, 도화동 사람들 심학규 죽네!”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려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그저 점점 들어가니,
“아이고 잘 죽는다.
정신도 말끔허고 숨도 잘 쉬고 아픈 데 없이 잘 죽는다.”
[아니리]
한참 이리 요란헐 제.
[엇모리]
중 하나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오는디, 이 중은 올라간다.
이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 화주승이라.
절을 중창허랴 하고 시주 집 내려왔다,
날이 우연히 저물어져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저 중의 맵시 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용두 새긴 육환장,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철 툭탁 짚고,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중이라 허는 게 속가에 가도 염불, 절에서도 염불.
염불을 많이 허면 극락세계 간다더라 나무아미타불.
원산은 암암허고 설월이 돋아오는디,
백저포 장삼은 바람결에 펄렁펄렁 염불을 허는디,
“아, 어허, 아, 아.
상래소수불공덕 회향삼처실원만 원왕생 원왕생 제궁종실각안녕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허고 올라갈 제, 한곳 당도하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리거늘.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 저문 날의 하소 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호가 변화하여 날 홀리는 울음인거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끼웃거리고 올라갈 제
한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이 개천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자진엇모리]
저 중의 급한 마음,
저 중의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내던지고,
버선, 행전, 다님 끄르고, 고두 누비바지 가래 따달 딸딸 걷어
자개미 딱 붙여, 무논의 백로 격으로, 징검징검 징검거리고 들어가
심 봉사 꼬드래 상투를 에뚜루미 쳐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보던 심 봉사라.
[아니리]
심 봉사 정신 차려,
“죽을 사람을 살려주니 은혜 백골난망이오.
거 뉘가 날 살렸소?”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이온데,
시주 집 내려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봉사님을 구하였소.”
“허허, 활인지불이라더니 대사가 나를 살렸소그려.”
그 중이 허는 말이
“여보 봉사님. 꼭 내 말을 들으면 두 눈을 뜰 것이오마는······.”
심 봉사가 눈 뜬다는 말을 듣더니
“아니 그 어쩐 말이오?”
“공양미 삼백 석만 우리 절에 시주하면 삼 년 내로 눈을 뜨오리다.”
심 봉사가 눈 뜬단 말에 후사는 생각지 않고 대번 일을 저지르난디,
“여, 대사, 자네 말이 그러할진대,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에 적소 적어.”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세력을 헤아리면
삼백 석은 말고 삼백 주먹이 없는 이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오?”
심 봉사 화를 내어
“자네가 내 수단을 어찌 아는가,
잔말 말고 적으라면 적어!”
저 중이 권선에 적은 후에
“여보시오 봉사님,
부처님을 속이면 앉은뱅이가 될 것이니 부디 명심하오.”
[창조]
중은 올라가고 심 봉사는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허니 이런 실없는 일이 없든가 보드라.
[중모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사 들렸네.
공양미 삼백 석을 내가 어찌 구하리오.
살림을 팔자 허니 단돈 열 냥을 누가 주며,
내 몸을 팔자 허니, 앞 못 보는 병신 몸을 단돈 서푼을 누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면은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 놈이 앉은뱅이가 되거드면, 꼼짝없이 내가 죽었구나.
수중고혼이 될지라도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어 내가 후회로구나,
저기 가는 대사, 권선의 쌀 삼백 석 에우고 가소, 대사!”
실성발광 기가 막혀 혼자 앉어 탄식헌다.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에 들어서며
“아버지.”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라 발 구르며
“이것이 웬일이오?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 웬일이며,
솜 없는 헌 의복에 물 흔적이 웬일이오.
나를 찾아 나오시다, 개천에 넘어져서 이 지경을 당하였소.
승상 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허여 어언간 더디었소.
말을 허오 말을 허여, 답답허여 못 살겄소.”
[아니리]
심 봉사 하릴없어
“여보아라, 청아.
너를 기다리다 못하여 더듬더듬 나가다가
이 앞 개천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난디,
뜻밖에 몽은사 화주승이 올라가다 나를 구해주고,
날더러 공양미 삼백 석만 몽은사 불전에 시주하면 삼 년 내로 눈을 뜬다 허더구나. 그리하여 후사는 생각지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에 적어 주었으니 이를 어쩔거나. 아무리 생각허여도 백계무책이로구나.”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은 고빙 허여 얼음 궁기 잉어 얻고,
맹종은 읍죽 허여 눈 속에 죽순 얻어 양친 성효를 하였으며,
곽거라는 옛 사람은 부모 반찬허여 놓으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고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효도가 옛사람만 못하여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부친을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허고 지극정성을 드리난디,
[진양조]
후원에 단을 뭇고 북두칠성횡야반에 촛불을 돋워 켜고,
정화수를 받쳐 놓고, 두 손 합장 무릎을 꿇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 비나이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의동심 하옵소서.
무자 생 소녀 아비, 삼십 전 안맹허여 오십이 장근토록 시물을 못하오니,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아비 눈을 밝히소서.
인간의 충효지심 천신 어이 모르리까.
칠 일 안에 어미 잃고 앞 어둔 부친에게 겨우겨우 자라나서 십오 세가 되었으나, 욕보지덕인데 호천망극이라,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부친 눈을 뜬다허니,
명천이 감동허여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급허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렇다시 빌어갈 제,
[중중모리]
하루난 문전의 웨난 소리
“우리는 남경 장사 선인으로 인당수 인 제수를 드리고저,
십오 세나 십육 세나 먹은 처녀를 사려허니,
몸 팔 일이 뉘 있습나?
있으면 있다 대답을 허시오. 아 아”
[아니리]
심청이 이 말을 듣더니 천재일시의 좋은 기회로구나,
이웃사람 알지 않게 몸을 은신하고,
선인 한 사람을 청하여 여짜오되,
[창조]
“소녀난 당년 십오 세인데
부친을 위하여 몸을 팔려 하오니
[아니리]
저를 사 가심이 어떠하오?”
선인이 좋아라고,
“출천지대효로고, 값은 얼마나 주오리까?”
[창조]
“더도 덜도 말고 공양미 삼백 석만 내월 십오일 내로 몽은사로 올려주오.”
[아니리]
“참으로 효녀로고,
그리하오, 염려 마오.
그러나 우리도 내월 십오일이 행선 날이오니 어찌 하오리까?”
[창조]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아니리]
피차 약속을 정하고 방으로 들어와 생각허니,
아무리 허여도 부친을 아니 속일 수가 없는지라,
심청 같은 효녀가 부친을 속일 리가 있으리오마는,
속인 것도 또한 효성이라, 부친을 속이는디,
“아버지, 오늘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게 되었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 봉사 깜짝 놀라
“아가, 거 웬 말이냐?”
“아버지, 전일에 승상 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말씀한 걸
분명 대답 못 했지요.”
“그래서?”
“오날 제가 건너가 아버지 사정을 여쭈오니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시고 저를 수양딸로 데려간다 하옵디다.”
“아가, 그 일 참 잘되었다.
그러면 언제 가기로 하였느냐?”
“내월 십오 일에 가기로 하였네다.”
“그러면 나는 어쩌고?”
“아버지도 모시고 가기로 하였네다.”
“그러면 그렇지, 눈먼 놈 나 혼자만 둘 것이냐,
잘되었다. 아따, 야야, 그 일 참 잘되었다.”
부친의 맺힌 근심을 위로하고 행선 날을 기다릴 제,
[진양조]
눈 어둔 백발 부친 생존 시에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 십오 세의 죽을 일을 생각허니,
정신이 막막허고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없는 서름이 간장으로 솟아난다.
부친의 사시 의복 빨래허여 농 안에 담어두고,
갓 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행선 일을 생각허니,
하룻밤이 격한지라, 모친 분묘 찾어가서, 주과포혜 차려놓고,
“아이고, 어머니.
불효 여식 청이난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 몸이 팔려 제수로 가게 되니,
불쌍헌 아버지를 차마 어이 잊고 가며,
분묘의 돋난 풀을 뉘 손으로 벌초하며,
연년이 오난 기일 뉘라서 받들리까?
내 손으로 부은 술을 망종 흠향허옵소서.”
사배하직허고 집으로 돌아와, 부친을 위로하고 밤 적적 삼경이 되니,
부친이 잠든지라 후원으로 돌아가서
사당 문을 가만히 열고 분향사배 우난 말이
“불효여식 청이는 선영향화를 끊게 되니 불승영모 허옵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부친이 잠들어 아무런 줄 모르거날 심청이 기가 막혀
크게 울든 못허고 속으로 느끼난디
“아이고 아버지, 아버지를 어찌허고 가리.
이내 한 몸 없어지면 동네 걸인이 또 될 것이니, 어찌 잊고 돌아가리,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밤이 몇 밤이며, 날 볼 날이 몇 날이오.”
얼굴도 대어보고 수족도 만지면서
“아버지, 오늘밤 오경 시를 함지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에다 맬 양이면,
불쌍허신 아부지를 일시라도 더 뵈련마는 인력으로 어이 허리.”
천지가 사정이 없어 벌써 닭이
“꼬끼오.”
“닭아 우지마라.
반야 진관 맹상군이 아니어든 니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을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중모리]
하량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 이별,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이라. 상봉헐 날이 있건마는 우리 부친 이별이야 어느 때나 다시 보리.
[아니리]
벌써 동방이 밝아지니, 심청이 정신을 차려
“이래서는, 못쓰겠다. 부친 진지나 망종 지으리라.”
부엌으로 나오니 벌써 문밖에 선인들이 늘어섰거늘, 심청이 빨리 나가
“여보시오 선인네들,
부친 진지나 잡수시게 허고 떠나는 게 어떠하오.”
선인이 허락허니 아침밥을 얼른 지어 소반 위에 받쳐 들고
“아버지 일어나 진지 잡수세요.”
“아가, 오늘 아침밥은 매우 일구나.
그런데 청아 간밤에 내가 묘한 꿈을 꾸었느니라.
니가 수레를 타고 끝없는 바다로 한없이 가 보이드구나.
그래서 내가 뛰고 궁글고 야단법석을 쳤는디,
수레라 허는 것은 귀인이 타는 것이여. 내가 꿈 해몽을 허여 보았지.
꿈에 눈물은 생시에 술이라.
오늘 장 승상 댁 부인이 너를 다려 가려고 가마를 보내실란가 보다.
오늘 장 승상 댁에서 술에다 고기에다 떡에다 잘 먹을 꿈인가부다.”
심청이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허고,
“아버지 그 꿈이 장히 좋습니다.
진지 잡수세요.”
“아가, 오늘 아침 반찬이 매우 걸구나,
뉘댁에 제사 지냈더냐?”
진지 상을 물리치고, 담배 붙여 올린 후에,
심청이 아무 말 못하고 우두머니 앉었다가,
[아니리]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제는 부친을 더 속일 수가 없는지라.
[자진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부친 앞으로 우르르르
“아이고, 아버지!” 한 번 부르더니 말 못 허고 기절한다.
심 봉사 깜짝 놀라
“아이고, 이거 웬일이냐.
어허, 이거 웬 일이여. 아니 얘가 급체하였는가,
아가 정신 차려라,
누가 봉사 딸이라고 정가하드냐?”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은 아버지를 속였소.”
“아, 이놈아, 속였으면 무슨 큰일을 속였난디
이렇게 아비를 놀라게 한단 말이냐?
말하여라, 답답허다. 말하여라.”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오늘이 행선 날이요.
어느 때나 뵈오리까.”
[아니리]
그때의 심 봉사는 눈 뜨기는커녕,
눈 빠질 말을 들었으니, 이 일이 어찌 되겄느냐?
심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고
“에이”
[휘중중모리]
“허허 이것 웬 말이냐?
못 허지야 못 하여 아이고 청아!
애비보고 묻도 않고, 너 이것이 웬일, 못 허지야 못 하여,
눈을 팔아 너를 살디 너 팔아 눈을 뜬들 무엇 보자 눈을 뜨랴.
철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 설움을 너 들어라.
너의 모친 너를 낳고 칠 일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본 늙은 애비가 품안에 너를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동냥젖 얻어 먹여
이만큼이나 장성 묵은 근심 햇근심을 널로 하여 잊었더니, 이것이 웬일이냐.
나를 죽여 묻고 가면 갔지, 살려두고는 못 가리라.”
그때의 선인들이 문밖에 늘어서
“심 낭자 물때 늦어 가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 봉사 이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
“에이, 무지한 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사서 제지낸 디 어디서 보았느냐?
옛글을 모르느냐?
칠년대한 가물 적에 탕 임군 어진 마음 사람 잡아서 빌랴허니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몸으로 희생되어 전조단발 신영백모 상림 뜰에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에 풍년이 들었단다. 나도 오늘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아이고,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 딸 심청 어린 것을 꼬염 꼬염 꼬여다가
인당수 제수 허면 네 이놈들 잘될쏘냐?”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이게 웬일이여?”
심청이 기가 막혀 부친을 부여안고
“아이고 아버지, 지중한 부녀 천륜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리까?
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 다시 보고 좋은 디 장가들어 칠십 생남 하옵소서.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아니리]
선인들이 이 정상을 보고, 전곡을 따로 내여 동인들께 부탁허되,
심 봉사 평생 먹고 입을 것을 내어 주었구나.
그때에 무릉촌 장 승상 댁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거날 심청이 부친 전 여짜오되
“아버지 장 승상 댁 부인이 청하였사오니 어찌하오리까?”
[창조]
“어따, 그 댁에난 열 번이라도 가고 백 번이라도 가거라.”
[아니리]
선인들께도 말허고 무릉촌을 건너갈 제,
[세마치]
시비 따라 건너간다. 울며불며 건너갈 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양친이 구존허여 부귀영화로 잘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허여 십오 세의 이 세상을 떠나는고.”
그렁저렁 길을 걸어 무릉촌을 당도허니, 부인이 영접하여
“예이 천하 무정한 사람아!
나는 너를 딸로 여기는디 너는 나를 속였느냐?
효성은 지극허나 앞 못 본 너의 부친 뉘게 의탁허랴느냐?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금 내가 줄 터이니, 선인들과 해약하라.”
심청이 여짜오되,
“장사하는 선인들께 수삭 만의 해약허면 선인들도 낭패오니,
이제 후회 쓸데 있소. 값을 받고 팔린 몸이 이제 두말 허오리까?”
부인이 심청의 기색을 보고 다시 두말 못허시고
“니 진정 그럴진대, 너의 화상이나 그려 널 본 듯이 보겠노라.”
화공을 즉시 불러 심 낭자 생긴 형용 역력히 잘 그려라.
화공이 영을 듣고 오색단청 풀어놓고
화용월태 고운 얼굴 모란화 한 송이가 세우 중에 젖인 듯이,
난초 같은 푸른 머리 두 귀밑에 따인 것과 녹의홍상 입은 태도 낱낱이 그려내어
족자 떨어 걸어 놓으니, 심청이가 둘이로다.
부인이 화제를 쓰시난디,
생기사귀일몽간허여 연장하필누삼삼고
세간의 최유단장처에 초록강남인미환이라.
부인이 심청을 부여안고
“인제 가면 언제나 올거나 오는 날이나 일러다오.”
[아니리]
심청이 일어서며
“물때가 늦어가니 어서 건너가겄네다.”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선인들은 재촉하고 부친은 뛰고 우니,
심청이 하릴없이 동네 어른들께 부친을 의탁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따라간다.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 자락을 거듬거듬 걷어안고
비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친다.
엎더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 따라갈 제,
건넛마을 바라보며
“이진사댁 작은 아가
작년 오월 단오야의 앵두 따고 노던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의 함께 걸교하잤드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는 양친이 구존허니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슬하를 떠나 죽으러 가는 길이로다.”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게 모도 울고
하느님이 아옵신지 백일은 어디 가고 음운이 자욱허여
청산도 찡그난 듯 초목도 눈물진 듯 휘늘어져
곱던 꽃이 이울고저 빛을 잃고 춘조는 다정허여 백반제송 허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허였간디 환우성 지어 울고,
뜻밖의 두견이난 귀촉도 귀촉도 불여귀라.
가지 위에 앉어 울겄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가 어이 돌아오리.
한곳을 당도허니,
광풍이 일어나며 해당화 한 송이가 떨어져 심청 얼굴에 부딪치니
꽃을 들고 하는 말이
“약도춘풍불해의면 하인취송낙화래라,
송 무제 수양공주 매화장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언제 다시 돌아오리.
죽고 싶어 죽으랴마는 수원수구 어이허리.”
걷는 줄을 모르고 울며불며 길을 걸어 강변을 당도허니,
선두에다 도판을 놓고 심청을 인도허는구나.
[아니리]
이때의 심청이는 세상사를 하직허고 공선의 몸을 싣고
동서남북 지향 없이 만경창파 높이 떠서 영원히 돌아가는구나.
[진양조]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료안으로 날아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만 돌아든다.
요량한 남은 소리 어적이언마는 곡종인불견의 수봉만 푸르렀다.
관내성중만고심은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를 지내가니 가태부 간 곳 없고 멱라수를 바라보니
굴삼려 어복충혼 무양도 허시든가.
황학루를 당도하니 일모향관하처시요 연파강상사인수는 최호 유적인가.
봉황대를 돌아드니 삼산반락청천외요 이수중분백로주는 태백이 노던데요.
심양강을 당도허니 백낙천 일거 후에 비파성도 끊어지고
적벽강을 돌아드니 소동파 노던 풍월 의구허여 있다마는
조맹덕 일세지웅 이금에 안재재요.
월락오제 깊은 밤에 고소성외 배를 매니 한산사 쇠북소리 객선에 뎅 뎅 들리거늘, 진회수를 바라보니
격강의 상녀들은 망국한을 모르고서 연롱한수 월롱사에 후정화만 부르더라.
악양루 높은 집이 호상에 솟아난 듯 무산의 돋은 달은 동정호로 비쳐오니
상하천광이 거울 속에 푸르렀다.
창오산이 아득허니 황릉묘 잠겼어라.
삼협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 소인이 눈물을 몇몇이나 뿌렸든고.
팔경을 다 본 후에,
[중모리]
한곳을 당도허니 향풍이 일어나며, 죽림 사이로 옥패 소리 들리더니
어떠한 두 부인이 선관을 높이 쓰고 신음 거려 나오면서
“저기 가는 심 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창오산붕상수절허여 죽상지루내가멸이라.
천추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오늘날 출천대효 너를 보니 오죽이나 흠전허랴.
요순 후 기천 년의 지금의 천자 어느 뉘며
오현금 남풍시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수로 먼먼 길을 조심허여 잘 가거라.”
이는 뉜고 허니, 요녀순처 만고열녀 이비로다.
소상강을 바삐 건너 오강을 당도허니 한사람이 나오난디,
키는 구 척이나 되고 면여거륜허여 미간이 광활허고
두 눈을 감고 가죽을 무릅쓰고 우루루루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 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슬프다.
우리 오왕!
백비의 참소 듣고 촉루검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에
가죽으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더니,
장부의 원통함이 월 범려 멸오 함을 내 일찍 눈을 빼어 동문 상에 걸고 왔네.
세상에 나가거든 내 눈 찾어 전해다오,
천추에 원통함이 눈 없는 것이 한이로세.”
이는 뉜고 허니 오나라 충신 오자서로다.
오강을 바삐 건너 멱라수를 당도허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으로 나오드니
슬피 탄식 우는 말이 진나라 속임 입어 삼 년 무관에 고국을 바라보며
미귀혼이 되었더니 박랑퇴성 반기 듣고 속절없는 동정 달에 헛춤만 추었노라.
뒤에 오는 한 사람은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허니 이난 초나라 굴원이라.
죽은 지 수천 년의 정백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와 보이니 이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다.
[진양조]
배의 밤이 몇 밤이며 물의 날이 몇 날이나 되든고,
무정한 사오 삭을 물과 같이 흘러가니,
추풍삽이석기하고 옥우곽기쟁영이라.
낙하는 여고목제비허고 추수는 공장천일색이라.
강한에 귤농 황금이 천편 노화의 풍기허니 백설이 만점이라.
신포세류 지는 잎은 만강추풍 흐날리고 옥로청풍은 불었난디,
외로울사 어선들은 등불을 돋워 켜고 어가로 화답허니
돋우난이 수심이요, 해반청산은 봉봉이 칼날되어 베이나니 간장이라.
일락장사추색원하니, 부지하처조상군고 송옥의 비추부가 이에서 슬프리요.
동녀를 실었으니 진시황의 채약 밴가, 방사는 없었으나
한 무제의 구선 밴가. 지레 내가 죽자 허니 선인들이 수직하고,
살아 실려 가자하니 고국이 창망이라. 죽도 살도 못 허는 신세야,
아이고 이 일 어찌허리.
[엇모리]
한곳 당도허니 이는 곧 인당수라.
대천바다 한 가운데 바람 불고 물결쳐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점글어져 천지 적막헌디
간치뉘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물결은 와르르르 출렁출렁.
도사공 영좌 이하 황황급급허여 고사 기계 차릴 제,
섬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우 술 오색탕수 삼색실과를 방위 찾어 갈라놓고
산 돝 잡어 큰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 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허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자진모리]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헌원씨 배를 모아 이제불통한 연후에 후생이 본을 받어 다 각기 위업하니
막대한 공이 아니냐.
하우씨 구년지수 배를 타고 다스릴 제 오복에 정한 공수 구주로 돌아들고
오자서 분오 헐 제 노가로 건네주고,
해성에 패한 장수 오강으로 돌아들어 의선대위 건네주고
공명의 탈조화는 동남풍 빌어 내어 조조의 백만 대병 주유로 화공허니
배 아니면 어이하리.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주요요이경양허니 도연명의 귀거래 해활 허니 고범지난 장한의 강동거요,
임술지추 칠월의 소동파 놀아 있고
지국총 총 어사와 허니 고예승류무정거난 어부 질검 계도난요하장포는
오희월녀 채련주요 타고발선하군랑의 상고선이 이 아니냐.
우리 선인 스물네 명 상고로 위업허여 경세우경년의 표박서남을 다니더니
오늘날 인당수에 인 제수를 드리고저
동해신 아명이며 서해신 거승이며 남해신 축융이며 북해신 옹강이며
강한지장과 천택지군이 하감허여 보옵소서.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비렴으로 바람 주고 해약으로 인도허여 환난없이 도우시고
백천만금 퇴를 내어 돛대 위에 봉기 꽂고
봉기 우에 연화 받게 점지허여 주옵소서.
고사를 다 지낸 후에
“심 낭자 물에 들라.”
심청이 죽으란 말을 듣더니마는
“여보시오 선인님네, 도화동이 어디쯤이나 있소?”
도사공이 나서더니 손을 들어서 가르키난디
“도화동이 저기 운애만 자욱한 디가 도화동일세.”
심청이 기가 막혀 사배하고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은 요만끔도 생각마옵시고 사는 대로 사시다가
어서어서 눈을 떠서 대명천지 다시 보고 좋은데 장가들어 칠십 생남허옵소서.
여보시요 선인님네 억십만금 퇴를 내어 본국으로 돌아가시거든
불쌍헌 우리 부친 위로허여 주옵소서.”
“글랑은 염려 말고 어서 급히 물에 들라.”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초마폭을 무릅쓰고 뱃전으로 우루루루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
[진양조]
해당은 광풍의 날리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도다.
영좌도 울고 사공도 울고, 격군 화장이 모두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에다 넣고 가니
후사가 어이 좋을 리가 있겠느냐.
닻 감어라 어기야, 어기야,
어기어. 어기야, 어허기야,
우후청강 좋은 흥을 묻노라 저 백구야 홍료월색이 어느 곳고,
일강소우노평생의 너는 어이 한가허드냐,
범피창파 높이 떠서 도용도용 떠나간다.
[아니리]
그때에 이러한 출천지대효녀를 하늘이 그저 둘 리 있겠느냐?
옥황상제께서 사해용왕을 불러 하교하시되
“오늘 묘시에 유리국 심 소저가 인당수에 들 터이니 착실히 모셔 오너라.”
용왕이 수명하고 내려와 용궁 시녀들을 불러
“너 이제 백옥교를 가지고 인당수 빨리 나가 묘시를 기다리면
인간의 심 소저가 들 터이니 착실히 모셔라.”
각궁 선녀들이 수명허고 인당수를 당도허니 때마침 묘시 초라.
그때의 심 소저는 물에 들듯 말듯 천지 명랑허고 일월이 조림커날
뜻밖에 팔선녀들이 백옥교를 앞에 놓고 예하며 여짜오되
“저희들은 용궁 시녀로서 부왕의 분부 듣고 소저를 뫼시고자 왔사오니
옥교를 타옵소서.”
심청이 여짜오되
“인간의 미천한 사람으로 어찌 옥교를 타오리까?”
“만일 아니 타면 상제께서 수궁 대죄를 내릴 테니 사양치 마옵소서.”
심 소저 마지 못허여 옥교에 앉으니 수궁 풍류가 낭자헐 제
[엇모리]
위의도 장할시구,
천상 선관 선녀들이 심 소저를 보려 허고
태을진 학을 타고 안기생 난 타고
고래 탄 이적선 청의동자 황의동자 쌍쌍이 모였네.
월궁항아 마고선녀 남악부인 팔선녀들이 좌우로 벌렸는듸,
풍악을 갖추울 제
왕자진의 봉 피리 니나니나 니나누,
곽 처사 죽장구 쩌지렁 쿵 쩡 쿵,
장자방의 옥퉁소 띳띠루 띠루,
성련자 거문고 슬기덩지 둥덩덩,
혜강의 혜금이며 수궁이 진동헌다.
괘룡골이위량허니 영광이 요일이요, 집어린이작와허니 서기반공이라.
주궁패궐은 응천상지삼광이요, 곤의수상은 비인간지오복이라.
산호 주렴 백옥 안상 광채도 찬란허구나.
주찬을 드릴 적에 세상 음식이 아니라
유리잔 호박병의 천일주 가득 담고 한가운데 삼천벽도를 덩그렇게 괴었으니
세상의 못 본 바라, 삼일의 소연허고,
오일에 대연허여 극진히 봉공 헌다.
[아니리]
하루는 천상에서 옥진부인 내려오난디,
이는 뉜고 하니 심 봉사 아내 곽씨 부인이 죽어
천상의 광한전 옥진 부인이 되었난디,
심청이가 수궁에 왔단 말을 듣고 모녀 상봉 차로 하강하시것다.
[진양조]
오색 채단을 기린에 가득 싣고 벽도화 단계화를 사면에 내려 꼽고
청학 백학은 전배 서고 수궁에 내려오니 용왕도 황겁하여 문전에 배회할 제,
옥진부인이 들어와 심청 손을 부여잡고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세상에서 너를 낳은 곽씨로다.
너의 부친 많이 늙었으리라.
나는 죽어 귀인 되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었으나
너는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이곳으로 들어왔다 허기로
너를 보러 내 왔노라.
세상에서 못 먹던 젖 이제 많이 먹어 보아라.”
심청 얼굴 끌어다 가슴에다 문지르며
“아이고 내 자식아, 꿈이면 깰까 염려로다.”
심청이 그제야 모친인 줄 짐작허고 부인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이것이 꿈이요 생시요.
불효여식 심청이는 앞 어둔 백발 부친 홀로 두고 나왔는디,
외로우신 아버지는 뉘를 의지허오리까?”
부인이 만류허며
“내 딸 청아 우지마라.
너는 일후에 너의 부친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광한전 맡은 일이 직분이 허다하여 오래 지체 어려워라.
요령 소리가 쟁쟁 나더니 오색 채운으로 올라가니
심청이 하릴없어 따라 갈 수도 없고 가는 모친을 우두머니 바라보며
모녀 작별이 또 되는구나.
[아니리]
하루는 옥황상제께서 사해용왕을 불러 하교하시되,
심 소저 방연이 가까오니 인당수로 환송허여 인간의 좋은 배필을 정해 주라.
용왕이 수명하고 심청을 환송헐 제,
꽃 한 봉을 조화있게 만들어 그 가운데 뫼시고 양대 선녀로 시위하고,
조석지공과 찬수 범절, 금주보패를 많이 넣고
용왕과 각궁 선녀 모두들 나와 작별허고 돌아서니 이는 곧 인당수라.
용왕의 조화인지라 꿈같이 번뜻 떠서 바람이 분들 흔들리며 비가 온들 젖을소냐. 주야로 덩실 떠 있을 때,
그때의 남경 갔던 선인들이 억십만금 퇴를 내어 본국으로 돌아 올 제,
인당수를 당도하니 심 소저의 효행이 홀연히 감동되는지라.
제물을 정히 차려놓고, 심 소저의 넋을 위로하는디,
[중모리]
북을 두리둥 둥 울리면서 슬픈 말로 제 지낸다.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 넋이냐.
오장원의 낙성허던 공명의 넋도 아니요,
삼 년 무관의 초 회왕의 넋도 아니요,
부친 눈을 띄우라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 되신 심 낭자의 넋이로다. 넋이라도 오셨거던 많이 흠향하옵소서.”
제물을 물에 풀고 눈물 씻고 바라보니 무엇이 떠 있는디,
세상의 못 본 바라. 도사공이 허는 말이
“저것이 무엇이냐, 금이냐?”
“금이란 말씀 당치 않소.
옛날 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으랴고 황금 사만 근을 흩었으니 금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옥이냐?”
“옥이란 말이 당치 않소. 옥출곤강 아니어든 옥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해당화냐?”
“해당화란 말씀 당치 않소. 명사십리가 아니거든 해당화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저게 무엇이냐? 가까이 가서 보자.
저어라 저어라,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차.”
가까이 가서 보니 향기 진동허고 오색 채운이 어렸거날,
[아니리]
배에 건져 싣고 보니 크기가 수레 같고 향기가 진동커날
본국으로 돌아와 허다히 남은 재물 각기 저 쓸 만큼 나눌 제
도선주 무슨 마음인지 재물은 마다허고 꽃봉만 차지하였구나.
그때는 어느 땐고 허니, 송 천자께서 황후 홀연 붕하신 후 납비를 아니 허시고
세상의 기화요초를 구하여 황극전 넓은 뜰에 가득히 심어 두고
조석으로 화초를 구경허실 제,
[중중모리]
화초도 많고 많다.
팔월 부용의 군자용, 만당추수에 홍련화, 암향부동월황혼 소식 전튼 한매화,
진시유랑거후재는 붉어 있다고 복성꽃, 구월구일용산음 소축신 국화꽃,
삼천제자를 강론하니 행단춘풍의 은행꽃.
이화만지불개문허니 장신궁 중 배꽃이요, 천태산 들어가니 양변개 작약이요,
원정 부지 이별허니 옥창오견의 앵도화. 촉국한을 못 이기어 제혈허던 두견화,
이화 도화 계관화 홍국 백국 사계화 동원도리편시춘 목동요지행화촌,
월중단계 무삼경 달 가운데 계수나무 백일홍 영산홍
왜철쭉 진달화 난초 파초 오미자 치자 감자 유자 석류 능낭 능금 포도 머루 어름 대추 각색 화초 갖은 향과 좌우로 심었난디
향풍이 건듯 불며 벌 나비 새 짐생들이 지지 울며 노닌다.
[아니리]
이때의 도선주는 천자께서 화초를 구하신단 소문을 듣고
인당수에 떴던 꽃을 어전에 진상허니 천자 보시고
세상에는 없는 꽃이라 선인을 입시하여 치하하시고 무릉 태수를 봉하였구나.
그 꽃을 후궁 화계 상에 심어 노니.
[중모리]
천자 보시고 반기허여
요지 벽도화를 동방삭이 따온 지가 삼천 년이 못 다되니 벽도화도 아니요,
극락세계 연화 꽃이 떨어져서 해상의 떠왔던지
그 꽃 이름은 강선화라 지으시고
조석으로 화초를 구경할 제 일야는 천자 심신이 황홀하야 화계 상을 거니난디
뜻밖에 강선화 벌어지며 선녀들이 서 있거날 천자 괴이 여겨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선녀 예하고 여짜오되
“남해용궁 시녀로서 심 소저를 모시고 세상에 나왔다가
불의에 천안을 범하였사오니 황공무지하오이다.”
인홀불견 간 곳 없고 한 선녀 서 있거날
[아니리]
황제 반신반의 하야 대강 연유를 탐문한 바
세상의 심 소저라. 궁녀로 시위하여 별궁에 모셔놓고
이튿날 조회 끝에 만조백관에게 간밤 꽃봉 사연을 말씀하니
만조제신이 여짜오되
“국모 없음을 하느님이 아옵시고 배필을 인도하심이니
천여불취면 반수기구라. 인연으로 정하소서.”
그 말이 옳다 허고 그 날로 택일허니 오월 오일 갑자 시라.
심 황후 입궁 후에 연년이 풍년이요, 가가호호 태평이라.
[창조]
그때에 심 황후 부귀 무쌍허나 다만 부친 생각뿐이로구나.
[아니리]
하루는 옥난간에 높이 앉어,
[진양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 비쳐들 제,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에 높이 떠서 뚜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 황후 반기 듣고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에 편지 전턴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헌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 장 전하여라.”
편지를 쓰랴 헐 제. 한 자 쓰고 눈물짓고 두 자 쓰고 한숨 쉬니
눈물이 먼저 떨어져서 글자가 수묵이 되니 언어가 도착이로구나.
편지 접어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보니 기럭은 간 곳 없고
창망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았구나.
[아니리]
이때에 황제 내궁에 들어와 황후를 살피시니
수심이 띄었거늘 황제 물으시되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심 황후 여짜오되 “솔토지빈이 막비왕신이라,
이 세상에 불쌍한 게 맹인이라 천지일월을 못 보니
적포지한을 한때라도 풀어 주심이 신첩의 평생 원이로소이다”
황제 칭찬하시고, 맹인 잔치를 여시는디
“각도각읍으로 행관하여 대소 인민 간의 맹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되
만일 빠진 맹인이 있으면 그 고을 수령은 봉직파직 하리라”
하고 각처로 전하였구나.
[진양조]
그때의 심 봉사는 모진 목숨 죽지도 않고 근근도생 지내갈 제
무릉촌 승상 부인이 심 소저를 보내시고
강두에 망사대를 지어 놓고 춘추로 제향헐 제,
도화동 사람들도 심 소저의 효성이 감동되어 망사대 곁에 타루비를 세워놓니
비문에 허였으되
“지위노친평생한허여 살신성효행선거라,
연파만리상심벽허니 방초년년환불귀라.”
이렇다 비를 허여 세워놓니, 오고가는 행인들도 뉘 아니 슬퍼하리.
심 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팡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찾아가서
비문을 안고 우드니라.
일일은 심 봉사 마음이 산란하여 딸의 비를 찾아가서
“후유 후유 아이고 내 자식아,
내가 왔다. 너는 아비 눈을 띄우랴고 수중고혼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 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산신 부락귀야, 날 잡어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찬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 앞에 가 엎더져 내려둥글 치둥굴며 머리도 찧고
가삼 꽝꽝 두발을 굴러 남지서지를 가리키는구나.
[창조]
낮이면 강두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아니리]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적에 심 봉사가 의식은 겨우 견디나
사고무친 수족 없어 사람 하나를 구하랴 헐 제
마침 본촌에 뺑덕이라는 여자가 있어 심 봉사가 전곡 있단 말을 듣고
동네사람도 모르게 살짝 자원 출가하였난디
이 뺑덕이네가 심 봉사 재산을 꼭 먹성질로 망허겄다.
[자진모리]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사먹고, 벼 퍼주고, 고기 사먹고,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행인 잡고 패악허고 이웃집에 밥 붙이기
잠자면 이 갈기와 배 끓고 발목 떨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가는 행인들께 담배 달라 실랑허고,
정자 밑에 낮잠 자고,
남이 혼인허랴 허고, 단단히 믿었는디 해담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자는디 가만가만 가만가만 뒤로 살짝 돌아가 봉창에 입을 대고
“불이여!”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하고,
삐쭉허면 빼쭉허고, 빼쭉하면 삐쭉허고,
이년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 봉사는 아무런 줄을 모르고 아조 뺑파에게 콱 미쳤겄다.
[아니리]
하로난 관가에서 심 봉사를 불러 들어가니, 사또 허신 말씀
“지금 황성서 맹인 잔치가 있는디
잔치 참여 아니 하면 그 고을 수령을 봉고파직한다고 관자가 내렸으니
즉시 올라가라.”
노자까지 후이 주겄다.
심 봉사 대답허고 집으로 돌아와
“여보 뺑덕이네, 오늘 관가에 가니 황성 맹인 잔치를 가라허니
나 혼자 어찌 갈게.”
[창조]
“아이고 여보 영감,
황성 천리 먼먼 길을
[아니리]
영감 혼자 어찌 가신단 말이요.
[창조]
여필종부라니 천리라도 가고 만 리라도 따라 가지요.”
[아니리]
“열, 열, 열녀로다. 그렇지,
아 다 보아도 우리 뺑파 같은 사람은 못 보았고,
그러면 돈 냥이나 있는 것 뉘게다 맡기고 갈꼬?”
“아이고 저러기에 외정은 살림 속을 몰라.
낳도 못허는 아이 선다고 살구 값, 팥죽 값, 떡 값,
그리저리 제하면 무슨 돈이 있겄소?”
“그래 잘 먹었다.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니 그만두고 황성길이나 떠나세.”
심 봉사가 뺑덕이네 앞세우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이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오라느냐.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데 가 잘고.
유황숙의 단계 뛰던 적로마나 있거드면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병신 몸이 몇 날을 걸어 황성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자룡 타고 월강허던 청총마나 있거드면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여보소 뺑덕이네.”
“예.”
“길소리나 좀 메겨 주소. 다리 아퍼 못 가겄네.”
뺑덕이네가 길소리를 메기난디
어디서 들었다던지 전라도 김매기 반 경상도 메나리조로 한번 메겨 보난디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가리.
날개 돋친 학이나 되면 펄 펄 수루루 날아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가리.”
[아니리]
한곳을 당도허니 봉사 수십 명이 모였거늘
“자, 우리가 이렇게 모였으니
벽돌림 시조나 한 장씩 불러 봅시다.”
심 봉사가 시조를 시주로 잘못 알아듣고
“아이고 내 앞에서 시주 말 내도 마시오.
내 딸 심청이가 시주 속으로 죽었소.”
여러 봉사 대소허고 길을 떠나 갈 제,
[중모리]
이렇다시 길을 가다 주막에 들어서 잠을 잘 제,
근처 사는 황 봉사라는 봉사가 주인과 약속을 하고
뺑덕이네를 꼬여 밤중에 도망을 하였난디,
심 봉사는 아무 물색을 모르고 첫 새벽에 일어나서 뺑덕이네를 찾는구나.
[아니리]
심 봉사가 깜짝 놀라 방 네 구석을 더듬어 보니 뺑덕이네가 가고 없네.
“여보 주인, 혹 우리 마누라 안에 들어갔소?”
“밤중쯤 되어서 새파란 봉사 한 사람하고 새벽질 떠난다고 벌써 갔소.”
[창조]
심 봉사가 그제야 뺑덕이네가 도망친 줄 짐작허고
[진양조]
“허허, 뺑덕이네가 갔네 그려.
덕이네, 덕이네, 덕이네, 뺑덕이네.
뺑덕이네가 도망을 갔네.
당초에 니가 버릴 테면 있던 곳에서 마다허지,
수백 리 타향에다가 나를 두고 니가 무엇이 잘 되겠느냐.
귀신이라도 못 되리라 요년아, 너 그런 줄 내몰랐다.
아서라, 니까짓 것 생각하는 놈이 시러베아들 놈이제.
현철허신 곽씨도 죽고 살고 출천대효 내 딸 청이도 생이별을 하였는디,
너까짓 년 생각하는 내가 미친놈이로구나.”
[중모리]
날이 차차 밝아지니 황성 길을 올라간다.
주막 밖을 나서더니 그래도 생각나서
“뺑덕이네 덕이네,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눈뜬 가장 배반키도 사람치고는 못 할 터인데,
눈 어둔 날 버리고 니가 무엇이 잘 되겠느냐.
새서방 따라서 잘 가거라.”
새만 푸르르르 날아가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고
바람만 우루루루 불어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네.
그렁저렁 올라갈 제,
이때는 어느 땐고. 오뉴월 삼복 성염이라.
태양은 불볕 같고 더운 땀을 휘뿌릴 제, 한곳을 점점 내려가니
[중중모리]
시내 유수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르르르 저 골 물이 꽐꽐,
열에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쳐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끔져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쾅쾅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치가 또 있나.
심 봉사 좋아라고 물소리 듣고 반긴다.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내려가서
의복을 훨훨 벗어 놓고 물에 가 풍덩 들어앉으며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
물 한주먹을 덥석 쥐어 양치질도 퀄퀄하고
또 한주먹을 덥석 집어 겨드랑도 문지르며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
삼각산을 올라선들 이어서 시원하며 동해 유수를 다 마신들 이어서 시원허리.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툼벙툼벙 좋을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리]
목욕허고 나와 보니 의관 행장이 없거날
[창조]
심 봉사 기가 막혀 “아 이 좀도둑놈들아 내 옷 가져 오너라.
내 옷 갖다 입은 놈들은 열두 대 떼 봉사 날 것이다.
[중모리]
허허 이제는 영 죽었네.
허허 이게 웬일이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백수 풍신 늙은 몸이 의복이 없었으니 황성길을 어이 가리.”
위아래를 훨씬 벗고 더듬더듬 올라갈 제,
체면 있는 양반이라 두 손으로 앞 가리고
“내 앞에 부인네 오시거든 돌아서서 가시오, 나 벗었소.”
[아니리]
한곳을 당도허니
[창조]
에이찌루 에이찌루 어라.
[아니리]
심 봉사 반기 여겨
“옳다 어디서 관장이 오나부다
관은 민지부모라니, 억지나 좀 써보리라.”
두 손으로 앞을 가리고 기엄기엄 들어가며
“아뢰어라, 아뢰어라 급창 아뢰어라.
황성 가는 봉사로써 배알 차로 아뢰어라.”
행차가 머물드니
“어데 사는 소경이며 어찌하여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랴는고?”
[창조]
“예, 소맹은 황주 도화동 사옵는디
황성 잔치 가는 길에 날이 하 더웁기로 이곳에서 목욕을 허다
의관의복을 잃었으니
[아니리]
찾아주고 가옵거나 별반 처분을 하옵소서.”
[중모리]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 하였으니 태수장 덕택의 살려주오.”
[아니리]
이 행차는 무릉 태수라 수배 불러 의복 한 벌 내어주라,
급창 불러 갓 망근 내어주라. 노비까지 후이 주며 잘 가라 하니,
“황송한 말씀이오나,
그 무지한 놈들이 담뱃대까지 가져갔사오니 어찌 하오리까.”
태수 허허 웃고 담뱃대까지 내어 주었것다.
심 봉사가 좋아라고
“은혜 백골난망이오.”
백배사례 하직허고 황성 길을 올라갈 제,
녹수경를 지내여 낙수교을 건너, 한곳을 다다르니
방아집이 있거늘 여인들이 모여 방아를 찧는디
심 봉사를 보고 조롱을 허겄다.
“근래 봉사들 한 시기 좋더구.
저 봉사도 황성 잔치에 가는 봉사인가부지.
거기 앉어 있지 말고 이리 와서 방아나 좀 찧어주고 가시오.”
심 봉사가 그 말 듣고
“점심만 줄 테면 방아 찧어주지요.”
“아, 드리고말고요.
밥도 주고 술도 주고 고기도 줄 터이니 방아나 좀 찧어 주시오.”
“허, 실없이 여러 가지 것 많이 준다.”
심 봉사가 점심을 얻어먹을 양으로 방아를 한번 찧어 보는디,
[중중모리]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는 이목덕으로 왕하였으니 남기 아니 중헐손가.
어유화 방아요.
유소씨 구목위소 이 남기로 집지셨나.
어유화 방아요.
신농씨 만든 쟁기 이 남기로 깎으셨나.
어유화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아냐 강태공의 조작이로다
어유화 방아요.
방아 만든 태도를 보니 사람을 비양튼가 이상하고도 맹랑하다
어유화 방아요.
옥빈홍안 태도런가 가는 허리에 잠이 질렸구나
어유화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 궁인 허리런가
어유화 방아요.
덜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머리 들어 오르는 양 창해 노룡이 성을 낸듯
어유화 방아요.
머리 숙여 내리는 양 주 문왕의 돈수런가
어유화 방아요.
오고대부 죽은 후에 방아 소리를 끊쳤더니,
우리 성상 즉위허사 국태민안 하옵시니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에 없는지라.
우리도 태평성대 방아소리나 하여보자.
어유화 방아요.”
[자진모리]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한 다리 치어 들고, 한 다리 내려딛고,
오리락내리락 허는 모양 사람보기 이상허구나.
어유화 방아요.
황성천리 가는 길에 이 방아를 만들었나.
어유화 방아요.
고소하구나 깨방아, 찐득찐득 찰떡 방아.
어유화 방아요.
재채기난다 고추 방아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보리쌀 뜨물에 풋호박 국 끓여라.
우리 방아꾼 배 충분허자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 떵떵 자주 찧어라. 점심때가 늦어간다.
어유화 방아요.
[아니리]
이렇다시 방아를 찧고 점심밥 얻어먹은 후에
그렁저렁 길을 걸어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여인이 문밖에 섰다.
심 봉사를 청하거늘 심 봉사 내념에
“이곳은 나 알 이가 없건마는 이상한 일이로다”.
여인을 따라가니 외당에 앉히고 저녁밥을 드리거날 석반 먹고 있노라니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심 봉사 깜짝 놀래
“댁이 무슨 의단 있소. 나는 독경 못하는 봉사요.”
“다른 걱정 말으시고, 안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여인을 따라 내당으로 들어가니 어떠한 부인이 좌를 주어 앉히면서.
[중모리]
이 부인이 말씀허되
“저는 안 가로써 황성에 사옵더니
부모 일찍 기세허고 저도 또한 맹인이 되어 복술을 배워 평생을 아자지라.
이십오 세에 길연이 있는디,
지금 제가 이십오 세일 뿐더러 간밤에 꿈을 꾸니
하늘에 일월이 떨어져 물에 잠겨 보이니 심 씨 맹인 만날 줄을 짐작허고
지내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 가옵더니 천우신조하여 이제야 만났으니
인연인가 하옵니다.”
[아니리]
심 봉사 좋아라고 맘이야 좋건마는 천부당만부당허는 소리
내게는 하나도 불관이오.
어찌되었든 간에 그날 밤 동방화촉에 호접몽을 이뤘것다.
[진양조]
그때여 심 황후는 부친 생각 간절허여 자탄으로 울음을 울 제,
"이 잔치를 배설키는 부친을 위함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고?
내가 영영 인당수에 죽은 줄 알으시고 애통허시다, 세상을 버리셨나?
부처님의 영험으로 완연히 눈을 떠 맹인 축에 빠지신가?
당년 칠십 노환으로 병이 들어 못 오신거나?
오시다가 노변에서 무슨 낭패 당허신가?
오늘 잔치 망종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다시 자탄을 하시다 예부상서 불러 분부하시되,
“오늘도 오는 소경이 있거든 성명을 낱낱이 받아 올리되
황주 도화동 사는 심학규라 하는 이 있거든 별전으로 모셔 드려라.”
그때에 심 봉사는 안 씨 부인과 인연을 정한 후에 잠을 자고 일어나드니
수심이 가득 하였거늘 안 씨 부인 물어 허는 말이,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창조]
간밤에 꿈을 꾸니 내가 불 속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베껴 북을 메어 보이고,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어 보이니
[아니리]
그 아니 흉몽이요?”
안 씨 부인 듣고 꿈 해몽을 하는디,
[창조]
“신입화하니 화락할 꿈이요,
거피작고허니 큰소리 날 꿈이요,
낙엽이 귀근하니, 자녀를 상봉이라.
[아니리]
그 꿈 대단히 좋사오니,
오날 궐문 안을 들어가면 좋은 일 있으오리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내게난 하나도 불관이요.”
아침밥을 먹고 궐내에 들어가는디,
[중중모리]
정원사령이 나온다. 정원사령이 나온다.
“각도각읍 소경님네, 오늘 맹인 잔치 망종이니 잔치 참례하옵소서.”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렇다 외난 소리, 원근산천이 떠드렇게 들린다.
“한 맹인도 빠짐없이 다 참례 하옵소서.”
[아니리]
그때여 수백 명 봉사들이 궐문 안에 들어가 앉었을
제 심 봉사는 제일 말석에 참례하였것다.
봉사의 성명을 차례로 물어 갈 제, 심 봉사 앞에 당도하야
"이 봉사 성명이 무엇이요?"
"예, 나는 심학규요."
"심맹인 여기 계시다!"
심 봉사를 뫼시고 별궁 으로 들어가니 심 봉사가 일향 죄가 있난지라.
"아이고 어쩌려고 이러시오.
허허 이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 들어왔다."
내궁에 들으니 그때 심 황후는 언간 용궁에 삼 년이 되었고
심 봉사는 딸 생각에 어찌 울고 세월을 보냈던지 더욱 백수 되었구나!
심 황후 물으시되
[창조]
"거주성명이 무엇이며 처자 있는가 물어 보아라."
심 봉사가 처자 말을 듣더니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뚝뚝 떨어지며
[중모리]
"예, 예, 아뢰리다.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년 삼월 달에 산후탈로 상처허고
어미 잃은 딸자식을 강보에 싸서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겨우 길러내어 십오 세가 되었으되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출천하야 그 애가 밥을 빌어 근근도생 지내 갈 제,
우연히 중이 찾어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시주허면 소맹이 눈을 뜬다 허니
효성 있는 딸자식이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죽은 지가 삼 년이요,
눈도 뜨지 못 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 두어 쓸 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아니리]
심 황후가 부친을 모를 리가 없지마는
소리를 허자니 자연즉 늦게 알었던가 보드라.
[자진모리]
심 황후 거동 봐라.
이 말이 지듯 마듯 산호 주렴 걷혀버리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아이고 아버지!"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 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아버지라니 누구여,
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 년인디,
아버지라니 이거 웬 말이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 여식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청이를 보옵소서."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예이 이것 웬 말이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난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아이고 갑갑허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해작해작허구나!
심 봉사 눈 뜬 바람에 만좌 맹인이 모도 일시에 눈을 뜨는디,
눈 뜨는 데도 장단이 있든가 보더라.
[자진모리]
만자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 갈모 띄는 소리라,
쫙쫙 쫙 허더니마는 모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 잔치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가던 봉사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한 맹인 중로에서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모도 일시에 눈을 뜨는디,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헤매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졸다 번듯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가 뜨고,
눈을 부벼 보느라고 뜨고,
지어비금주수라도 눈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었구나.
[아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