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설은 범우사에서 출간한 김경아 편저의
'김제종제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사설만 뽑은 것입니다.
고 춘전 성우향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소리를
김경아 선생님이 다듬어 출간한 책입니다.
사설에 각주를 달아 어려운 대목의 이해를 도왔고,
소리를 배우는 분들을 위하여 소리의 마디를 표시했습니다.
또한 제2부에서는 차용된 한시를 실어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김세종제(金世宗制) 판소리 춘향가
[아니리]
호남의 남원이라 허는 고을이 옛날 대방군이었다.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성강, 남적강성 허고 북통운암허니
곳곳이 금수강산이요, 번화승지로구나.
산 지형이 이러허니 남녀간 일색도 나려니와 만고충신 관왕묘를 모셨으니,
당당한 충렬이 아니 날 수 있겄느냐?
숙종대왕 즉위 초에 사또 자제 도련님 한 분이 계시되,
연광은 십육 세요, 이목이 청수허고 거지현량허니 진세간 기남자라.
하로난 일기 화창하야 사또 자제 도련님이 방자 불러 분부허시되
“얘, 방자야, 내 너의 고을 내려 온 지 수삼 삭이 되었으나
놀기 좋은 경치를 몰랐으니, 어디 어디가 좋으냐?”
방자 여짜오되,
“아니 여보시오 도련님.
인제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승지는 찾아서 무엇허시려오?”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호걸들이 승지강산을 구경허고 대문장이 되었으니라.
승지라 허는 것은 도처마다 글귀로다. 내 이를 터이니 들어 보아라."
[중중모리]
기산 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 채석강 명월야에 이적선도 놀아 있고
적벽강 추야월 의 소동파도 놀고, 시상리 오류촌 도연명도 놀아 있고,
상산의 바돌 뒤던 사호 선생이 놀았으니, 내 또한 호협사라.
동원도리편시춘 아니 놀고 무엇허리? 잔말 말고 일러라.”
[아니리]
“도련님 말씀이 그리 허옵시면 대강 아뢰옵지요.
동문 밖 나가오면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오면 관왕묘를 모셔있어 만고영웅이 어제련 듯허옵고,
북문 밖을 나가오면 교룡산성 대복암이 좋사오며,
남문 밖을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삼남 제 일루로소이다.”
“이 애, 방자야 네 말을 들어보니 광한루가 제일 좋을 듯싶구나.
광한루 구경가게 나귀 안장 지어라.” “예이.”
[자진모리]
방자 분부 듣고, 나귀청으로 들어가, 나귀 솔질 살살 가진 안장 짓는다.
홍영, 자공, 산호편, 옥안, 금천, 황금륵, 청홍사 고운 굴레,
상모 물려 덥벅 달아 앞뒤 걸쳐 질끈 매,
칭칭 다래 은엽등자 호피 돋움이 좋다.
도련님 호사헐 제, 신수 좋은 고운 얼굴, 분세수 정히 허고
, 감태 같은 채진 머리, 동백기름 광을 올려, 갑사 댕기 드려두고,
쌍문초 진동옷, 청중추막을 바쳐, 분홍띠 눌러 띠고 만석 당혜를 좔좔 끌어,
방자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통인방자 앞을 세고 남문 밖 나가실 제,
황학의 날개 같은 쇄금 당선 좌르르 피어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성남 너룬 길, 호기 있게 나가실 제,
봉황의 나난 티껼, 광풍 좇아 펄펄 날려,
도화점점 붉은 꽃 보보향풍 뚝 떨어져,
쌍옥제번 네 발굽에 걸음걸음이 생향이라.
일단선풍도화색 위절도적표마가 이에서 더하오며,
항장수 오추마가 이에서 더할쏘냐?
서부렁섭적거려 광한루 당도허여,
[아니리]
도련님이 광한루에 올라서서 사면 경치를 바라보실 적에
[진양조]
“적성의 아침 날의 늦인 안개 띠어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화류동풍 둘렀난디,
요헌기구하최외난 임고대를 일러있고,
자각단루분조요난 광한루를 이름이로구나.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오작교가 분명허면 견우직녀 없을쏘냐?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서 될고?
오날 이곳 화림 중에 삼생연분 만나볼까?”
[아니리]
“좋다, 좋다! 과연 호남의 제일루라 허겄구나.
이 애, 방자야, 오늘같이 좋은 경치 중에 술이 없어 쓰겄느냐!
술 한 상 가져오너라.”
방자가 술상을 드려놓으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 애, 방자야 오날 술은 상하동락허여 연치 찾아 먹을 터이니,
너희 둘 중에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느냐?”
“도련님 말씀이 그리하옵시면,
아마도 저 후배사령이 낫살이나 더한 듯허나이다.”
“그럼 그 애부터 부어주어라.”
후배사령 먹은 후의 방자도 한 잔 먹고,
도련님도 못 자시는 약주를 이렇듯 이삼 배 자셔노니, 취흥이 도도허여,
[중중모리]
앉었다 일어서 두루두루 거닐며, 팔도강산 누대경개 손꼽아 헤아릴 제,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 평양 감영의 부벽루, 연광정 일러있고,
주렴취각은 벽공에 늘어져, 수호문창은 덩실 솟아,
앞으로는 영주각, 뒤로는 무릉도원, 흰 ‘백’ 자, 붉을 ‘홍’은 송이송이 꽃피우고,
붉을 ‘단’, 푸를 ‘청’은 고물 고물이 단청이라.
유막황앵환우성은 벗 부르난 소리요, 황봉백접쌍쌍비난 향기 찾는 거동이라.
물은 보니 은하수요, 산은 장관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허면 월궁항아 없을쏘냐?
[자진중중모리]
백백홍홍난만중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쁜 미인이 나온다.
저와 같은 계집아이와 함께 그네를 뛰려 허고,
녹림 숲 속을 당도허여 휘늘어진 벽도 가지 휘휘 칭칭 잡어매고,
섬섬옥수를 번듯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쥐고 선뜻 올라 발구를 제,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듯 높았고,
두 번을 툭 구르니 뒤가 번듯 솟았네.
난만도화 높은 가지 소소리 쳐 툭툭 차니,
춘풍취화낙홍설이요 행화습의난홍무라.
그대로 올라가면 요지황모를 만나볼 듯,
그대로 멀리 가면 월궁항아 만나볼 듯,
입은 것은 비단이나 찬 노리개 알 수 없고,
오고간 그 자취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봉을 타고 내려와 진루의 농옥인가
구름타고 올라간 양대의 무산선녀,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어찌 보면 곧 가까워 들어갔다 나오는 양
연축비화낙무연, 도련님 심사가 산란허여
[아니리]
“이 애, 방자야. 저 건너 녹림 숲 속에 울긋불긋 오락가락 하는 게 저게 무엇이냐?” “아 도련님 무얼 보고 말씀이시오?
소인 놈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오.”
“네 이놈 이리 가까이 와서 내 부채발로 보아라.”
“부채발이요? 도련님 부채발은 말고요, 미륵님발로 보아도 안 보이오.”
“네 이놈, 자세히 보아라.”
“아 금매 자시는 말고 축시에 보아도 안 보인단 말이오.”
“옳지 저기 올라간다, 올라가. 내려온다, 내려와.”
“아 도련님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오라, 병든 솔갱이가 깃 다듬니라고
두 날개를 척 벌리고, 움쑥움쑥 허는 그걸 보고 말씀이시오?”
“네 이놈! 내가 병든 솔갱이를 모르겠느냐?
어서 똑똑히 보아라. 옳지 저어기 들어간다, 들어가. 나온다, 나와.”
“도련님 저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 우리 숫당나귀 고삐를 길게 매 놨드니,
그 건네 암당나귀를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걸 보고 말씀이시요?”
“네 이놈! 내가 당나귀를 모를까? 어서 똑똑히 아뢰어라.”
“아 금매 저릅대 똑똑 부질러도 안 보인단 말이오.”
“그래,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고 네 눈에는 안 보일진대, 내가 탐심이 없어 금이 화하여 보이는 게로구나!”
“허허 도련님, 아 금출지내력을 소인 놈이 아뢸 텡께 자세히 들어보시오 잉.
[중중모리]
금이란 말씀 당치 않소.
금은 옛날 초한 적 육출기계 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으려고,
황금 사만 근을 초군 중에 흩었으니 금이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저게 옥이냐?”
“옥이란 말씀 당치 않소.
화염곤강 불이 붙어 옥석이 모두 다 탔으니 옥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것이 해당화란 말이냐?”
“해당화란 말씀 당치 않소. 명사십리가 아니거든 해당화 어이 있으오리까?”
“그러면 저것이 귀신이냐?”
“귀신이란 말씀 당치 않소. 대명천지 밝은 낮에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아니리]
“그럼 금도 옥도 귀신도 아니라면 저게 무엇이란 말이냐?
답답하여 못 살겠구나. 어서 건너가 보고 오너라.”
방자 생각허되 하정의 도리로 웃양반을 너무나 속이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
“예이, 저게 다른 것이 아니오라,
이 고을 퇴기 월매의 딸이라 하옵난디 본시 제 몸 도고허여 기생구실 마다허고,
백화춘엽에 글자나 생각허며, 여공자색과 문필을 겸하였으며,
오월 단오일마다 여염집 아이들과 저곳에 나와서 추천을 하는 춘향이로소이다.” “이 애, 그럼 그 기생의 딸이란 말이로구나! 내 한번 못 불러볼까?”
“그렇지 못 할 사정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슨 사정이란 말이냐?”
[자진모리]
“춘향의 설부화용 남방의 유명키,
장강의 색과 이두의 문필과 태사의 화순심과 이비 정렬행을 흉중에 품어 있어,
금천하지절색이요 만고여중의 군자오니,
황송한 말씀으로 호래척거는 못하리다.”
[아니리]
“이 애, 네가 무식허구나!
형산백옥과 여수황금이 물각유주라,
임자가 각각 있는 법이니 잔말 말고 빨리 불러 오도록 허여라.”
“예이.”
[자진모리]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겅거러지고 맵시 있고 태도 고운 저 방자
세속 없고 발랑거리고 우멍스런 저 방자,
서왕모요지연의 편지 전턴 청조처럼 말 잘허고 눈치 있고 영리한 저 방자,
쇠털 벙치, 궁초 갓끈 맵시 있게 달아 써,
성천동우주 접저고리, 삼승버선, 육날신을 수지 빌어 굽 들메고,
청창 옷 앞자락을 뒤로 잦처 잡어매,
한 발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충충 충충거리고 건너간다.
조약돌 덥석 집어 버들에 앉은 꾀꼬리 툭 처 휘어 처 날려보고,
장송가지 툭 꺽어 죽장 삼어서 좌르르 끌어 이리저리 건너가,
춘향 추천허는 앞에 바드드드득 들어서 춘향을 부르되 건혼이 뜨게,
“아나 옜다, 춘향아!”
[아니리]
춘향이 깜짝 놀래 그네 아래 내려서며
“하마터면 낙상할 뻔하였구나!”
“허허, 아 나 사서삼경 다 읽어도 이런 쫄쫄이 문자 처음 듣겄네.
인제 열대여섯 살 먹은 처녀가 뭣이 어쩌? 낙태했다네!”
향단이 썩 나서며
“아니 이 녀석아! 언제 우리 아씨가 낙태라드냐, 낙상이라고 했제!”
“그래, 그건 잠시 농담이고, 향단이 너도 밥 잘 먹고 잠 잘 잤더냐?
그런데 큰일 났네. 오늘 일기 화창허여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 자네들 노는 거동을 보고 빨리 불러오라 허시니 나와 같이 건너가세.”
“아니 엊그제 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
네가 도련님 턱밑에 앉어 춘향이니 난행이니 기생이니 비생이니
종조리새 열씨까듯, 시앙쥐 씨 나락 까듯 똑똑 꼬아 바치라더냐?
이 쥐구녁으로 쏙 빠질 녀석아!”
“허허, 춘향이 글공부만 허는 줄 알았더니 욕 공부도 담뿍 허였네그려.
아니 자네 욕은 고삿이 훤허시그려.
그러나 자네 처사가 그르제?”
“아니 내 처사가 뭐가 그르단 말이냐?”
“내 이를 터이니 들어 보아라.”
[중중모리]
“니 그른 내력을 니 들어 보아라.
니 그른 내력을 니 들어 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여봐라 추천을 헐량이면은
너의 집 후원의 그네를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허여 은근히 뛸 것이지,
또한 이곳을 논지허면, 광한루 머잖은 곳
녹음은 우거지고, 방초는 푸르러,
앞내 버들은 청포장 두르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 둘러,
한 가지는 찢어지고 또 한 가지는 늘어져,
춘비춘흥을 못 이기어 흔들흔들 너울너울 춤을 출 제,
외씨 같은 두발 맵시는 백운 간에 가 해뜩,
홍상자락은 펄렁, 잇속은 해뜩, 선웃음 방긋,
도련님이 너를 보시고 불렀지, 내가 무슨 말 허였단 말이냐?
잔말 말고 건너가세.”
[아니리]
“이 애가 점점 더 미치는구나.
내 미천허나 기안착명 헌 일 없고
여염집 아이로서 초면남자 전갈 듣고 따라가기 만무허니, 너나 어서 건너가거라.” “여보게 춘향이 오늘 이 기회가 시호시호부재래라.
아, 낭군을 얻으려면 뚜렷한 서울 낭군을 얻지, 시골 무지랭이를 얻으려느냐?” “허, 미친 녀석! 낭군도 시골 서울이 다르단 말이냐?”
“그렇지야 인걸은 지령이라, 사람도 산세 따라 나는 법이다.
내가 이를 터이니 들어보아라.”
[자진모리]
“산세를 이를게 니 들어라. 산세를 이를게 니 들어.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허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허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허기로 사람이 나면 재조 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 있고,
경기도로 올라 한양 터 보면 경운동 높고 백운산 떴다.
삼각산 세 가지 북주가 되고,
삼각산이 떨어져 인왕산이 주산이요, 종남산이 안산인디
동작이 수구를 막기로. 사람이 나면 선할디 선하고 악하기로 들면 별악지상이라. 양반 근본을 네 들어라.
부원군 대감이 자기 외삼촌이요, 이조판서가 동성조부님이요,
시직 남원 부사 당신 어르신이라.
네가 만일 아니 가고 보면 내일 아침 조사 끝에 너의 노모를 잡어다,
책방단장 아래 난장형벌에, 주릿대 방망이,
굵은 뼈 부러지고 잔뼈 으스러져,
얼게미 채궁이 진가리 새듯 아조 살살 샐 것이니,
갈랴거든 가고 말랴면 마라, 떨떠리고 나는 간다.”
[아니리]
허고 방자가 돌아가니 춘향이가 어리석어 잠깐 속은 듯이,
“글씨, 방자야 꽃이 어찌 나비를 따라간단 말이냐?
너나 어서 건너가 도련님 전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여쭈어라.”
방자 충충 건너오니 도련님이 화가 나서
“네 이놈 방자야! 내가 춘향을 데리고 오라 허였지 쫓고 오라더냐?”
“금매 쫓기는 누가 쫓아요.
그렁께 소인 놈이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헝께 도련님이 가라고 가라고 하시더니
춘향이가 욕을 담뿍 허옵니다.”
“그래, 춘향이가 무슨 욕을 허드냐?”
“거 뭐드라마는, 옳제 안주에다 접시에다 받쳐서 술 한 잔 잡수시고,
그냥 해수병 걸리라 헙니다.”
“무엇이? 안주에 접시?”
[창조]
“안수해, 접수화라?
[아니리]
" 애, 방자야. 저 혹시 춘향이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아니 허드냐?”
“예, 맞습니다. 도련님 그게 무슨 욕이다요?”
“그게 욕이 아니니라.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나비가 꽃을 찾는다.
그러니 날더러 저를 찾아오라는 뜻이니라.
방자야, 오늘 퇴령 후에 춘향 집을 찾어갈 것이니
춘향 집이 어데인지 가르쳐다오.”
방자 좋아라고 손을 들어 춘향 집을 가리키난디,
[진양조]
“저 건너 저 건너 춘향 집 보이난디,
양양한 향풍이요, 점점 찾어 들어가면 기화요초난 선경을 가리우고,
나무 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헌다.
옥동도화만수춘은 유랑의 심은 것과 현도관이 분명허고,
형형색색 화초들은 이향이 대로우고,
문 앞의 세류지난 유사무사양류사요,
들총, 측백, 전나무는 휘휘 칭칭 얼크러져서 담장 밖에 솟아 있고,
수삼 층 화계 상의 모란, 작약, 영산홍이 첩첩이 쌓였난디,
송정죽림 두 사이로 은근히 보이난 것이 저것이 춘향의 집이로소이다.”
[아니리]
“좋다, 좋다! 장원이 정결허고 송죽이 울밀허니 여기지절개로다.
이 애, 방자야. 책실로 돌아가자.”
도련님이 책실로 돌아와서 글을 읽되,
혼은 벌써 춘향 집으로 건너가고 등신만 앉어 노루글로 뛰어 읽것다.
[창조]
“맹자견양혜왕허신디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허시니,
역장유이리오국호이까?
[아니리]
이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들여라.
[창조]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허며 재친민허며 재지어지선이니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넌 신부로다 홍도 어이 신부 되리?
우리 춘향이 신부 되지.
태고라 천황씨는 이쑥떡으로 왕했것다.”
[아니리]
방자 곁에 섰다 허허 웃고, “아니 여보시오 도련님. 태고라 천황씨 때는 이 목덕으로 왕 했단 말은 들었어도 쑥떡으로 왕 했단 말은 금시초문이오.”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태고라 천황씨 때는 선비들이 이가 단단허여 목떡을 자셨거니와 지금 선비야 이가 단단치 못 허여 어찌 목떡을 자시겄느냐? 그러기에 공자님께서 후세를 위하여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교일허시고 명륜당에 현몽허였느니라.” “허허 도련님, 아 거 하느님이 들으면 깜짝 놀랄 거짓 말씀이오.” “이 애 방자야 천자를 들여라.” “도련님 일곱 살 자신 배 아니신데 천자는 드려서 무엇 허시게요?”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천자라 허는 것이 칠서의 본문이라. 새겨 읽으면 그 속이 천지위낭장만물 속이니라.” 도련님이 천자를 들여놓고 천자 뒤풀이를 허시난디,
[중중모리]
“자시에 생천허니 불언행사시 유유피창 하늘 ‘천’,
축시에 생지허여 금, 목, 수, 화를 맡았으니 양생만물 따 ‘지’,
유현미묘 흑정색 북방현무 검을 ‘현’,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중앙토색의 누루 ‘황’,
천지사방이 몇 만 리 하루광활 집 ‘우’,
연대국조 흥망성쇠 왕고래금 집 ‘주’,
우치홍수 기자추연 홍범구주 넓을 ‘홍’,
전원이 장무호불귀라, 삼경이 취황 거칠 ‘황’,
요순천지 장헐시구 취지하일 날 ‘일’,
억조창생 격양가 강구연월 달 ‘월’,
오거시서 백가어 적안영상 찰 ‘영’,
이 해가 어이 이리 더디 진고 일중즉측의 기울 ‘측’,
이십팔수 하도낙서 진우천강 별 ‘진’,
가련금야숙창가라 원앙금침 잘 ‘숙’,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준주 벌일 ‘열’,
의의월색삼경야의 탐탐정회 베풀 ‘장’,
부귀공명 꿈밖이라 포의한사 찰 ‘한’,
인생이 유수 같다. 세월이 절로 올 ‘래’,
남방천리불모지지 춘거하래 더위 ‘서’,
공부자 착한 도덕 기왕지사의 갈 ‘왕’,
상성이 추서방지어 초목이 황락 가을 ‘추’,
백발이 장차 오거드면 소년풍도 걷을 ‘수’,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강산의 겨우 ‘동’,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
부용 작약의 세우 중에 왕안옥태 부를 ‘윤’,
저러한 고운 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니다가 부지세월 해 ‘세’,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 중 ‘율’,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 중 ‘여’ 자로 놀아보자.”
[아니리]
하고 소리를 질러노니 사또 들으시고
“이리 오너라! 책방에서 무슨 소리가 저렇게 요란헌가,
빨리 사실 알아드려라!”
통인이 내려 와서
“쉬, 도련님이 무슨 소리를 지르셨간디 사또께서 들으시고
빨리 사실하라 하나이다.”
“사또께서 들으셨단 말이냐?
다른 집 노인들은 이롱증도 있건마는
우리 집 어른은 연만허실수록 귀가 점점 더 밝으시는구나!
이 애 네가 올라가서 네 거짓말 내 거짓말 합하여
도련님이 장자 편을 읽으시다
북해곤이 새가 되어 남명으로 날아가는 양을 보고 흥취로 소리가 높았다고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어노니 사또 대소허시며
“용생용이요, 봉생봉이로다.”
“하인 물리라.”
“예이.”
[진양조]
퇴령 소리 길게 나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 애, 방자야.” “예이.” “청사초롱 불 밝혀 들어라. 춘향 집을 어서 가자.”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 집을 건너갈 제, 협로진간 너룬 길은 운간월색 희롱허고, 화간의 푸른 버들, 경치도 장히 좋다. 춘향 집을 당도허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정하의 섰는 반송 광풍이 건듯 불면 노룡이 굼니난 듯, 뜰 지키는 백두룸은 사람 자취 일어나서 나래를 땅으다 지르르르르 끌며, 뚜루루루 낄룩 징검 징검, 알연성이 거이허구나!
[아니리]
도련님과 방자가 춘향 문전에 당도허여 “이 애 방자야, 어서 들어가서 내가 왔다는 말이나 허여라.” 이때의 춘향 모친은 아무 물색도 모르고 이렇듯 함부로 말을 허고 나오는디,
[중중모리]
“달도 밝고 달도 밝다.
원수년의 달도 밝고, 내당연의 달도 밝다.
나도 젊어 소시절 남원읍에서 이르기를 ‘월매, 월매’ 이르더니,
세월이 여류허여 춘안노골 다 되었다.
늙은 것이 한이로다.”
[아니리]
이러고 나오다가 방자허고 꽉 마주쳤것다.
“거 뉘냐?”
“예 방자예요!”
“방자 너 어찌 왔냐?”
“도련님 모시고 왔나이다.”
“아이고, 이 미련헌 자식아
도련님을 모시고 왔거든 나헌테 미리 연통이나 허제 그랬느냐?
아이고 도련님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시기는 천만 의외올시다.
어서 방으로 올라 가옵시다.”
도련님이 방으로 들어가서 좌를 틀어 앉은 후의 방안을 잠깐 살펴보니,
별로 사치스러운 것은 없으나 뜻있는 주련만 걸려 있것다.
[세마치]
동벽을 바라보니,
주나라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려고 위수변 낚시질 허는 거동 뚜렷이 걸려 있고,
서벽을 바라보니 상산사호 네 노인이 바돌판을 앞에 놓고,
어떠한 노인은 흑기를 들고 또 어떤 노인은 백기를 손에 들고,
대마상패수를 보랴 허고 요만허고 앉어 있고,
또 어떤 노인은 청려장 짚고, 백우선 손에 들고,
요만허고 굽어보며 훈수허다
책망 듣고 무안색으로 서 있는 거동 뚜렷이 걸렸구나!
남벽을 바라보니,
관우, 장비, 양 장수가 활 공부 힘써 헐 제. 나는 기러기 쏘랴 허고
장궁철전 먹여 들고, 비정비팔의 흉허복실허여,
주먹이 툭 터지게 좀통을 꽉 쥐고, 앞뒤뀌미 놀잖게 대두 뻣뻣 머리 숙여,
깍지손을 뚝 떼 논 듯 번개같이 나는 살이 살대 수르르르 떠들어가,
나는 기러기 절컥 맞어 빙빙 돌아 떨어지는 거동 뚜렷이 걸렸구나!
북벽을 바라보니, 소상강 밤비 개고 동정호 달 오른디,
은은한 죽림 속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이십오현을 앞에다가 놓고
스리렁 둥덩 타는 거동 뚜렷이 걸렸구나!
서안을 살펴보니, 춘향이 일부종사허랴 허고 글을 지어 붙였으되,
대우춘종죽이요, 분향야독서라, 왕희지 필법이로구나!
[아니리]
그때에 도련님이 처음 일이라 말궁기가 막혀 묵묵히 앉었을 제
알심 있는 춘향 모친 도련님의 말궁기를 열을 양으로
“아이고 이 애 향단아!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셨는디 무얼 대접헌단 말이냐?
어서 주안상 봐오너라.”
향단이 술상을 들여놓으니 춘향 모친이 술 한 잔 부어들고
“도련님, 박주허나마 약주나 한 잔 드시지요?”
그제야 도령의 말궁기가 열리난디,
“오날 저녁 오는 뜻은 내가 무슨 술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늘 일기 화창하야 광한루 구경 나갔다가
춘향 노는 거동을 보고 인연에 중매되어 나왔으니,
춘향과 날과 백년언약이 어떻겄소?”
춘향모 이 말 듣고 일희일비로 말을 허는디,
[엇중모리]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남원 부사로 오셨을 때,
일등 명기 다 버리고 나를 수청케 하옵기에
그 사또 모신 후에 저 아를 아니 낳소?
이조참판 승차허여 내직으로 올라가신 후에 그 댁 운수 불길허여
영감께서 상사허신 후 내 홀로 길러내어 칠 세부터 글을 읽혀 사서가 능통허니,
누가 내 딸이라 허오리까?
재상가는 부당허고 사서인은 부족하와, 상하불급의 혼인이 늦어가와,
주야 걱정은 되오나, 도련님 허신 말씀 장전의 말씀이니,
그런 말씀 말으시고 잠깐 노시다나 가옵소서.”
[아니리]
도련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불충불효허기 전에는 잊지 않을 테니 어서 허락허여 주소.”
춘향모 생각허니 간밤의 몽조가 있난지라
꿈 ‘몽’ 자, 용 ‘용’ 자 분명 이몽룡이가 배필이라 생각허고 이면에 허락허였구나. “도련님 그러면 혼서지 사주단자 겸하여 증서나 한 장 써 주시옵소서.”,
“글랑은 그리허게.”
지필묵을 드려노니 일필휘지 허였으되,
천장지구에 해고석란이요, 천지신명은 공증차맹이라,
“자, 이만허면 어떻소?”
춘향모 받어 간수허고 춘향 모친 술 한 잔 부어들고
“도련님 약주나 한 잔 드시오”
“이 술은 경사주니 장모가 먼저 드시게.”
춘향 모친 술잔 들고 한숨 쉬며 허는 말이,
[중모리]
“세월도 유수같다. 무남독녀 너 하나를 금옥같이 길러 내어,
봉황 같은 짝을 지어 육례 갖춰 여우자 허였더니,
오늘밤 이 사정이 사차불피 이리되니 이게 모두 네 팔자라,
수원수구 어이 허리?
너의 부친 없는 탓이로구나.
칠십 당년 늙은 몸을 평생 의탁허잤더니 허망히 이리되니,
삼종지법을 좇자허면 내 신세를 어쩔거나?”
[아니리]
“장모, 오늘같이 즐거운 날 너무 서러워 말게.”
춘향 모친 술 한 잔 받고 그때여 도련님과 춘향이도 이렇듯 반배를 허는디,
알심 있는 춘향 모친 그 자리에 오래 앉어 있겄느냐?
향단이 불러 자리 보전시키고 춘향 모친과 향단이는 건넌방으로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이 단둘이 앉었으니 그 일이 어찌 될 일이냐?
그날 밤 정담이야말로 서불진혜요, 언불진혜로다.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오륙 일이 되어 가니,
나이 어린 사람들이 부끄러움은 멀리 가고 정만 담뿍 들어,
하루난 안고 누워 둥글면서 자연히 사랑가로 즐기난디,
[진양조]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덥쑥 빠져 먹든 못 허고, 으르르렁 어헝 넘노난 듯,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을 넘노난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 간을 넘노난 듯,
구고 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 간의 넘노난 듯,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이지.
오호 둥둥 네가 내 사랑이지야.
목락무변수여천의 창해같이 깊은 사랑,
삼오 신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 완월 사랑,
생전 사랑이 이러허면 사후기약이 없을쏘냐?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 삼춘화가 되고,
나도 죽어 범나비 되어, 네 꽃보고 좋아라고,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너울 춤추거드면, 네가 날인 줄 알려무나.”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아가니, 꽃 되기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루 인경이 되고, 나도 죽어 인경마치가 되어,
밤이면 이십팔수, 낮이면 삼십삼천 그저 댕 치거드면 네가 날인 줄 알려무나.”
“인정되기도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가 되되,
따 ‘지’, 따 ‘곤’, 그늘 ‘음’, 아내 ‘처’, 계집 ‘녀’ 자 글자가 되고,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아비 ‘부’, 사내 ‘남’, 기특 ‘기’, 아들 ‘자’ 자 글자가 되어
계집 ‘녀’ 변에 똑같이 붙여서 좋을 ‘호’ 자로 놀아 보자.”
[아니리]
“도련님은 어찌 불길하게 사후 말씀만 허시나이까?”,
“오 그럼 우리 정담도 허고 우리 업고도 한번 놀아보자.”
도련님이 춘향을 업고 한번 놀아 보는디,
[중중모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이 이 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백청을 따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 점 움푹 떠 반간지술로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 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동지지루지허니 외가지 단 참외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 도령 스는 디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매도 내 사랑아.”
[아니리]
“이 애,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날 좀 업어다오.”
“도련님은 나를 가벼워 업었지만,
나는 도련님이 무거워서 어찌 업는단 말씀이오?”
“얘야. 내가 널다려 날 무겁게 업어 달라더냐?
내 양팔만 네 어깨 우에 얹고 징검징검 걸어 다니면
그 속이 천지위낭장만물 속이니라.”
춘향이가 도련님을 업고 노는디 파겁이 되어 마구 낭군 자로 업고 놀것다,
[중중모리]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둥둥 둥둥 오호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 자가 절로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시고.
소상동정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구나.
둥둥 둥둥 오호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 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허니 ‘정’ 자 노래를 들어라.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허니 강수의 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하남 태수의 희우정, 삼태육경의 백관조정, 주어 인정, 복 없어 방정,
일정실정을 논정허면, 네 마음 일편단정,
내 마음 원형이정, 양인심정이 탁정타가 만일 파정이 되거드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완정허잔 그 ‘정’ 자 노래라.”
[아니리]
“아이고 우리 도련님 말씀도 잘도 허시네.”
“어디 그것뿐이랴? 또 ‘궁’ 자 노래 한번 들어 볼래?
이 노래는 조금 상스럽기는 허나 너와 나와 둘이 있는데
무슨 노래를 못 부르겠느냐?
[자진모리]
“‘궁’ 자 노래를 들어라.‘궁’ 자 노래를 들어라.
초분천지개탁후 웅장허다 창덕궁, 강태공의 조작궁,
진시황의 아방궁, 진진허구나 홍문연을 들어간다. 번쾌자궁,
이 궁 저 궁을 다 버리고, 이 애 춘향아, 이리 오너라. 밤이 깊어간다. 이리 와.”
“아이고 부끄러워 나는 못 가겄소.”
“아서라 이 계집, 안 될 말이로다. 어서 벗어라 잠자자.”
와락 뛰어 달려들어 저고리, 치마, 속적삼 벗겨, 병풍 위의 걸어 놓고,
덩뚱땅 법중 ‘여’로다.
초동 아이 낫자루 잡듯, 우악한 놈 상투 잡듯,
양각을 취어드니, 베개는 우그로 솟구치고,
이불이 벗겨지며 촛불은 제대로 꺼졌구나. 병풍이 우당퉁탕.
[단중모리]
이리 한창 요란헐 제 말하지 않더래도 알리로다.
[아니리]
이렇다시 사랑가로 세월을 보낼 적에,
호사다마라, 뜻밖에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구나.
도련님이 부친 따라 아니 갈 수 없어 하릴없이 춘향 집으로 이별차 나가시는디,
[늦은 중모리]
점잔허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울음 울 리 없지마는,
춘향과 이별헐 일을 생각허니 어안이 멍멍,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없난 서름이 간장에서 솟아난다.
두고 갈까, 다려갈까 하서러히 울어 볼까?
저를 다려 가자허니 부모님이 꾸중이요, 저를 두고 가자허니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사세가 난처로구나!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중중모리]
그때의 향단이 요염섬섬 화계 상의 봉선화에 물을 주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깜짝 반겨 일어서며,
“도련님, 이제 오시니까?
전에는 오시랴면 담 밑에 예리성과 문에 들면 기침소리,
오시는 줄을 알겄더니 오늘은 누구를 놀래시랴고 가만가만히 오시니까?”
그때의 춘향 모친 도련님 드리랴고 밤참을 장만허다
도련님을 얼른 보고 손뼉치고 나오면서,
“허허, 우리 사위 오시네. 남도 사위가 이리 어여쁠까?
밤마다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 한이로세.
아 제자가 형제분만 되면 데릴사우 내가 꼭 정허제.
한 분되니 헐 수 있소.”
도련님 아무 대답 없이 방문 열고 들어서니,
그때여 춘향이는 도련님을 드리랴고 금낭에 수를 놓다
단순호치 반기허여 쌍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잡고 허는 말이,
“수색이 만면허니 이게 웬일이요?
편지 일 장 없었으니 방자가 병들었소?
어데서 손님 왔소? 벌써 괴로워 이러시오?
사또께 꾸중을 들으셨소?
누가 내 집에 다니신다 해담을 들으셨소?
약주를 과음하여 정신이 혼미헌가?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에 손을 대고 꼭 꼭꼭 찔러 보아도 몸도 꼼짝 아니 허네.”
[중모리]
춘향이가 무색허여 뒤로 물러나 앉으며,
“내 몰랐소, 내 몰랐소, 도련님 속 내 몰랐소.
도련님은 양반이요, 춘향 저는 천인이라,
잠깐 좌정허였다가 버리는 게 옳다 허고 나를 떼랴고 허시는디,
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짝사랑 외즐거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겄소.
듣기 싫어하는 말은 더 허여도 쓸데가 없고,
보기 싫어허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느니,
나는 건넌방 어머니에게 가지이이”
바드드득 일어서니 도련님 기가 막혀 가는 춘향을 부여잡고,
“게 앉거라. 게 앉거라.
네가 미리 속을 찌르기로 내가 미쳐 말을 못 허였다.
속 모르면 말을 마라.”
[창조]
“속 모르면 말 말라니 그 속이 참 속이요, 꿈속이오?
말을 허오 말을 허여 답답허여 못 살겄소.”
[아니리]
“이 애,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허여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단다.”
“아이고 도련님 댁에는 경사 났소그려.”
[중중모리]
“올체 인제 내 알았소,
도련님 한양을 가시면 내 아니 갈까 염려시오?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천 리 만 리라도 도련님을 따라가지.”
[아니리]
“속 모르는 소리 점점 더하는구나.
내아에 들어가 네 사정을 품고 허였더니,
미장전 아이가 외방작첩 하였다는 말이 원근에 낭자하면,
[창조]
사당참례도 못 허고, 과거 한 장도 못해 보고, 노도령으로 늙어죽는다허니,
[아니리]
이 일을 장차 어쩔거나?” “그럼 이별이란 말씀이오?” “이별이야 될 수 있겠느냐마는 잠시 훗기약을 둘 수밖에는 없구나.” 춘향이가 이 말을 듣더니, 어여쁜 얼굴이 누루락 푸루락 허여지며 이별 초두를 내는디,
[진양조]
와락 뛰어 일어서더니
“여보시오 도련님, 여보 여보 도련님!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요, 농담이요,
이별 말이 웬 말이요?
답답허니 말을 허오. 작년 오월 단오야의 소녀 집을 찾어 와서,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 저는 여기 앉어 무엇이라 말허였소?
산해로 맹세허고 일월로 증인을 삼어,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살지 말자 허였더니마는,
주일년이 다 못 되어 이별 말이 웬 말이요?
공연한 사람을 상상 가지에 올려놓고 밑에서 나무를 흔드네그려.
향단아,”
“예.”
“건넌방 건너가서 마나님을 오시래라, 도련님이 떠나신단다.
사생결단을 헐란다. 마나님을 오시래라.”
[아니리]
그때에 춘향 모친은 아무 물색도 모르고
초저녁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보니 건너 춘향 방에서 울음소리가 나거든,
아이고 저것들 또 사랑싸움 허나부다.
울음 밑이 장차 길어지니 춘향 모친이 동정을 살피러 나와 보는디,
[중중모리]
춘향 모친이 나온다. 춘향 모친이 나온다.
허던 일 밀쳐놓고 상초머리 행자초마 모양이 없이 나온다.
춘향 방 영창 앞에 가만히 올라서 귀를 대고 들으니 정녕한 이별이로구나!
춘향 모친 기가 막혀 어간마루 섭적 올라 두 손뼉 땅땅,
“어허 별일 났네.
우리 집에 별일 났어. 한 초상도 어려운데 세 초상이 웬일이냐?”
쌍창문 번쩍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주먹 쥐고 딸 겨누며,
“야! 요년아, 썩 죽어라. 내가 일상 말하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후회되기가 쉽겄기에 태과헌 맘먹지 말고 여염을 세아려서,
지체도 너와 같고,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같이 짝을 지어 내 눈앞에 노는 양은 너도 좋고 나도 좋지야.
마음이 너무 도도허여 남과 별로 다르더니 오 그 일 잘되었다.”
도련님 앞에 달려들어,
“여보시오 도련님, 나하고 말 좀 허여 보세.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허니 인물이 밉던가 언어가 불손턴가,
잡시럽고 흉하던가, 노류장화가 음란헌가,
어느 무엇이 그르기로 이 봉변을 주랴시오?
군자 숙녀 버리난 법,
칠거지악을 범잖허면 버리난 법 없난 줄을 도련님은 모르시오?
내 딸 춘향 사랑헐 제, 잠시도 놓지 않고,
주야장천 어루다, 말경에 가실 때는 뚝 띠어 버리시니,
양류의 천만산들 가는 춘풍을 잡아매 낙화 후 녹엽이 된들 어느 나비가 돌아와,
내 딸 옥 같은 화용신 부득장춘, 절로 늙어 홍안이 백수 되면,
시호시호부재래라. 다시 젊지 못하느니.
내 딸 춘향 임 그릴 제,
월청명야삼경 창천의 돋은 달 왼 천하가 밝아 첩첩수심이 어리어
가군의 생각이 간절. 초당 전 화계 상에 담배 피워 입에 물고
이리저리 거닐다 불꽃같은 시름, 상사, 심중에 왈칵 나면,
손들어 눈물 씻고 북녘을 가리키며,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그립든가?
내 사랑 옮겨다가 다른 임을 꼬이나? 뉘 년의 꼬염을 듣고 영이별이 되려나?
아조 잊고 여영 잊어 일자수서가 돈절허면 긴 한숨 피눈물은 창 끊는 애원이라.
방으로 뛰어 들어가 입은 옷도 아니 벗고,
외로이 벼개 우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 끌끌 울 제,
속에 울화가 훨훨, 병이 아니고 무엇이오?
늙은 어미가 곁에 앉아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달래어도,
시름 상사 깊이 든 병 내내 고치든 못 허고 원통히 죽게 되면,
칠십 당년 늙은 년이 딸 죽이고 사위 잃고,
지리산 갈가마귀 겟발 물어 던진 듯이,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의지허오리까?
이왕에 가실 테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향단이까지 마자 죽여,
삼 식구 아조 죽여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고는 못 가리다.
양반의 자세 허고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아니리]
도련님 기가 막혀
“장모. 좋은 수 있네. 춘향만 다려가면 그만 아닌가?
내일 요여 배행 시에 신주는 내어 내 도포 소매에 모시고,
춘향이를 요여 안에 태우고 가면, 뉘가 요여 안에 춘향이 태우고 간다 헐라든가?”
[창조]
“아니고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오.
오죽 답답허고 민망허여야 저런 망언을 허오리까?
어머니는 건넌방으로 건너가시오.
도련님과 저는 밤새도록 울음이나 실컷 울고, 내일은 이별을 헐라요.”
[중모리]
춘향 모친 기가 막혀
“못 허지야, 못 허지야. 네 마음대로는 못 허지야.
저 양반 가신 후로 뉘 간장을 녹이려느냐?
보내어도 곽을 짓고 따라가도 따라가거라.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너의 서방님을 따라가거라.
나는 모른다.
너희 둘이 죽든지 살든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아니리]
춘향 모친은 건넌방으로 건너가고
춘향과 도련님과 단둘이 앉어 통 울음으로 울음을 우는디,
[중모리]
일절통곡애원성은 단장곡을 섞어 운다.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도련님은 올라가면 명문귀족재상가의 요조숙녀 정실 얻고,
소년급제 입신양명 청운에 높이 올라 주야 호강 지내실 제,
천리남원 천첩이야 요만큼이나 생각허리?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오.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시랴오?
동서남북 너룬 바다 육지가 되거든 오시랴오?
마두각 허거든 오시랴오? 오두백 허거든 오시랴오?
운종용, 풍종호라. 용 가는 디는 구름가고, 범이 가는 디는 바람이 가니,
금일송군 임 가신 곳 백년소첩 나도 가지.”
도련님이 기가 막혀,
“오냐, 춘향아 우지마라.
오나라 정부라도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 있고,
공문한강천리외의 관산월야 높은 절행 추월강산이 적막헌디,
연을 캐며 상사허니 너와 나와 깊은 정은 상봉헐 날 있을 테니,
쇠끝같이 모진 마음 홍로라도 녹지 말고, 송죽같이 굳은 절개,
네가 날 오기만 기다려라.”
둘이 서로 꼭 붙들고 실성발광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그때여 춘향이가 오리정으로 이별을 허러 나갔다 허되,
그럴 리가 있겄느냐?
내행차 배행 시에 육방관속이 오리정 삼로 네거리에 늘어서 있는디
체면 있는 춘향이가 서방이별 헌다 허고 퍼버리고 앉어 울 수가 없지.
[창조]
꼼짝 달싹 못 허고 저의 집 담장 안에 이별을 허는디,
[진양조]
와상 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채려 내어 놓으며,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왕에 가실 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허니,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 뉘 있으리?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한양을 가시다가
강수청청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허고,
마상에 뇌곤허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행장을 수습허여 부디 평안이 행차허오.”
[중모리]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너와 나와 만날 때는 합환주를 먹었거니와,
오늘날 이별주가 이게 웬일이냐?
이 술 먹지 말고 이별말자.
이별 근본 네 들어라.
하량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 이별,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이라.
이런 이별 많건마는 너와 나와 당한 이별,
만날 날이 있을 테니 설어 말고 잘 있거라.”
도련님이 금낭 속에서 추월 같은 대모석경 춘향 주며 허는 말이
“이 애, 춘향아 거울 받어라.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은지라
날 본 듯이 내어 보아라.”
춘향이 그 거울 간수허고, 저 쪘던 옥지환을 바드득 빼어 내어
도련님 전 올리면서,
“옜소, 도련님, 지환 받으오.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 빛과 같사오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두고 보소서.”
피차정표 헌 연후에 떨어지지를 못 허는구나!
[자진모리]
내행차 떠나는디 쌍교를 어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병마, 나졸이 분분헐제, 방자 겁을 내어 나귀 몰고 나간다.
다랑다랑 다랑다랑, 춘향 문전 당도허여,
“어허, 도련님 큰일났소! 내 행차 떠나시며
도련님을 찾삽기로 먼저 떠나셨다 아뢰옵고 왔사오니, 어서 가옵시다.
이별이라 허는 게 너 잘 있거라, 나 잘 간다, 분명이게 이별이제,
웬 놈의 이별을 이리 뼈가 녹도록 헌단 말이오?
어서 가옵시다.”
[중모리]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디 임은 꼭 붙들고 아니 놓네.
도련님이 하릴없이 나귀 등에 올란지며,
“춘향아, 잘 있거라. 장모도 평안히 계시오,
향단이도 잘 있거라.”
춘향이 기가 막혀 도련님 앞으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한 손으로 나귀 정마 쥐어 잡고, 또 한 손으로 도련님 등자 딛은 다리 잡고,
“아이고,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쌍교도 싫고, 독교도 나는 싫소.
걷는 말께 반부담 지어서 어리렁 추렁청 날 다려가오.”
방자 달려들어 나귀 정마 쥐어 잡고 채질 툭 처 돌려세니,
비호같이 가는 말이 청산녹수 얼른 얼른 한 모롱 두 모롱을 돌아드니,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달만큼 보이다, 별만큼 보이다가 나비만큼 보이다가,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 잠긴 듯이 아조 깜박 박석치를 넘어가니,
춘향이 그 자리에 법석 주저앉아
“아이고 허망허네.
가네 가네 허시더니 이제는 참 갔구나!”
[아니리]
이렇다시 도련님은 서울로 떠나고
춘향이 하릴없이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디,
[진양조]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던 침방 들어올 제,
만사가 정황이 없고 촉목상심 허는구나.
“여보아라, 향단아, 발 걷고 문 닫쳐라.
춘몽이나 이루어서 알뜰한 도련님을 몽중에나 다시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난 임은 신의 없다 일렀으되
답답이 그릴진대 꿈 아니면은 어이 보리?
천지 생겨 사람 나고 사람 생겨 글자낼 제,
뜻 ‘정’ 자, 이별 ‘별’ 자는 어느 누가 내셨던고?
이별 ‘별’ 자를 내셨거든 뜻 ‘정’ 자 내잖거나, 뜻 ‘정’ 자 내셨거든
만날 ‘봉’ 자를 내잖거나, 공방적적대고등허니 바랠 ‘망’ 자가 염려로구나!”
[중모리]
행궁견월상심색허니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단장성에 비만 많이 와도 임의 생각.
추우오동엽낙시에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안암산 노송정에 쌍비쌍쌍
저 뻐꾹새 이리로 가면서 뻐꾹 뻑뻑꾹
저리로 가면서 뻐꾹 뻑뻑꾹 뻑꾹 울어도 임의 생각이 절로 나네.
식불감미 밥 못 먹고,
침불안석 잠 못 자니 이게 모두가 임 그리운 탓이로구나!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전혀 없이,
모진 간장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끌거나.
이리 앉어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구나!
[아니리]
그때의 구관은 올라가고 신관이 났는디,
서울 자하골 사는 변 ‘학’ 자 ‘도’ 자 쓰는 양반이라.
호색허기 짝이 없어, 남원의 춘향 소식 높이 듣고
밀양 서흥 마다허고 간신히 서둘러 남원부사허였구나!
하루난 신연하인 대령허여 출행날을 급히 받어 도임차 내려오는디,
신연 절차가 이렇것다.
[자진모리]
신연맞어 내려온다. 별련 맵시 장히 좋다.
모란 새긴 만자창 네 활개 쩍 벌려, 일등마부, 유랑달마 덩덩그렇게 실었다.
키 큰 사령 청창옷, 뒤채잽이에 힘을 주어 별련 뒤따랐다.
남대문 밖 썩 나서 좌우 산천 바라 봐,
화란춘성만화방창 버들잎 푸릇푸릇 백사, 동작 얼핏 건너 승방골을 지내어
남태령 고개 넘어 과천읍에 가 중화허고,
이튿날 발행헐 제 병방, 집사 치레 봐라. 외올망건 추어 맺어
옥관자, 진사당줄 앞을 접어 빼어 쓰고,
세모립의 금패 갓끈 호수립식 제법 붙여 게알탕건을 받쳐 써
진남항라자락 철릭 진자주대 곧 띠어, 전령패 비쓱 차고,
청파역마 갖은 부담, 호피 돋움을 연저 타고,
좌우로 모신 나졸, 일산 구종의 전후배,
태고 적 밝은 달과 요순 시 닦은 길로 각 차비가 말을 타고 십 리허의 닿었다.
“마부야!
니 말이 낫다 말고 내 말이 좋다 말고
정마 손에다 힘을 주어 양 옆에 지울잖게 마상을 우러러 보며 고루 저었거라.”
저롭섭다.
신연 급창 거동 보소.
키 크고 길 잘 걷고, 어여뿌고, 말 잘 허고 영리한 저 급창,
석성망건, 대모관자, 진사당줄을 달아 써,
가는 양태 평포립, 갑사 갓끈 넓게 달아 한 옆 지울게 비쓱 쓰고,
보라 수주 방패 철릭, 철릭자락을 각기 접어
뒤로 잦혀 잡어매 비단 쌈지 천 주머니,
은장도 비쓱 차고 사날 초신을 넌짓 신고
저름저름 양유지 초록다님을 잡어 매고,
청창줄 검쳐 잡고, 활개 훨훨, 층층 걸음 걸어
“에라. 이놈, 나지 마라!”
전배나장 거동 보소.
통영 갓에다 흰 깃 꼽고, ‘왕’ 자 덜거리 방울 차, 일산의 갈라서서,
“에이 찌루거 이놈 저놈 게 앉거라.”
통인 한 쌍 착전립, 마상태 고뿐이로다.
충청양도를 지내어 전라 감영을 들어가 순상 전 연명 허고,
이튿날 발행헐 제,
노구바우, 임실 숙소, 호기 있게 내려올 제,
오리정 당도허니 육방 관속이 다 나왔다.
질청 두목 이방이며, 인물 차지 호장이라.
호적 차지 장적빗과, 수 잘 놓는 도서원, 병서, 일서, 도집사, 급창, 형방 옹위허여 권마성이 진동허여 거덜거리고 들어간다.
천파총, 초관, 집사 좌우로 늘어서고,
오십 명 통인들은 별련 앞의 배행허고,
육십 명 군로 사령 두 줄로 늘어서 떼 기러기 소리허고,
삼십 명 기생들은 가진 안장, 착전립, 쌍쌍이 늘어서 갖인 육각, 홍철릭,
남전대 띠를 잡어 매고, 북장고 떡 궁 붙여,
군악 젓대 피리소리 영소가 진동헌다. 수성장 하문이라!
[휘모리]
천총이 영솔허여 청도기 벌였난디,
청도 한 쌍, 홍문 한 쌍, 주작 남동각 남서각 홍초 남문 한 쌍,
백호 현무 북동각 북서각 흑초 관원수, 마원수, 왕령관, 온원수,
조현단 표미 금고 한 쌍, 호총 한 쌍, 나 한 쌍, 저 한 쌍, 바래 한 쌍,
세악 두 쌍, 고 두 쌍, 영기 두 쌍, 군로직열 두 쌍, 좌마독존이요,
난후 친병, 교사 당보 각 두 쌍으로 퉁 캥 차르르르,
나누나, 지루나, 고동은 뛰,
나발은 홍앵홍앵,
“에꾸부야 수문 돌이 종종종 내문 돌에 걷잡혀
무삼 실족 험로허나니”
어허어 어허어
“후배사령!”
“예이!”,
“좌우 잡인을 썩 금치 못 헌단 말이냐?”
척척 바우어, 하마포, 이삼승, 일읍 잡고 흔드난 듯,
객사에 연명 허고 동헌의 좌기허여,
“대포수!”
“예이!”
“방포일성 하라!”
“쿵!”
[아니리]
좌기초 허신 후에, 삼행수 문안 받고, 행수군관 입례 받고, 육방하인 현신 후에, 도임상 물리치고, 자고 자고 나니 제 삼일 되었구나! 호장이 기생 점고를 허랴 허고 영창 앞에 기안을 펼쳐 들고 차례로 부르난디,
[세마치]
“오던 날 기창전의 연연옥골 설행이!”
설행이가 들어온다.
설행이라 허는 기생은 걸음을 걸어도 장단을 맞추어 아장아장 들오더니
“예, 등대 나오.”
점고를 맞고 일어서더니 좌부진퇴로 물러난다.
“차문주가하처재요 목동요지 행화!”
행화가 들어온다. 행화라 허는 기생은 홍상자락을 거듬거듬 흉당에 걷어 안고,
대명당 대들보 밑에 명매기 걸음으로 아장아장 찌이긋거려
“예, 등대 나오.”
점고를 맞고 일어서더니 우부진퇴로 물러나는구나.
[아니리]
“여봐라. 기생 점고를 이리 허다가는 몇 날이 될 줄 모르겠구나.
한꺼번에 둘씩 셋씩 마고 잡아 포개 불러들여라.”
호장이 멋이 있어 넉 자 화두로 불러드리난디,
[중중모리]
“조운모우 양대선이, 우선유지 춘흥이!” “나오!”
[늦은 중중모리]
“사군불견 반월이 독좌유황의 금향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남남지상의 봄바람 힐지항지 비연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팔월부용의 군자용 만당추수의 연화가 왔느냐?”
“예, 등대 하였소.”
“주홍당사 벌매듭 차고 나니 금낭이, 사창에 비추었다.
섬섬영자 추월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진주 명주 자랑마라. 제일 보배 산호주가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광한루상명월야의 사시장천 명월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독조한강설허니 천수만수 이화 육각삼현을 떡쿵 치니
장삼 소매를 떠들어 메고 저정거리던 무선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단산오동의 그늘 속에 문왕 어루던 채봉이 왔느냐?”
“예, 등대 허였소.”
“초산 명옥이, 수원 명옥이, 양 명옥이가 다 들어왔느냐?”
“예, 등대 나오!”
[아니리]
“기생 점고 다 한 줄로 아뢰오.”
“여봐라. 너의 고을에 춘향이가 있다지?
어찌 춘향이는 이 점고에 불참이 되었는고?”
“예이, 춘향이는 본시 퇴기 월매의 딸이오나 기안착명이 안되었고,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련님과 백년가약을 맺었기로 수절을 하고 있나이다.”
“무엇이?
춘향이가 수절을 허면 댁 마마께서는 장판방에 떡 요절을 헐 지경이로구나.
잔말 말고 빨리 불러들여라.”
다른 사람 같고 보면 사령이 나갈 일이로되,
춘향이는 과거의 체면이 있는지라 행수기생을 보내는디,
[단중모리]
행수기행이 나간다.
행수기생이 나간다.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춘향 문전 당도허여 손뼉을 땅땅 두다리며,
“정렬부인 애기씨,
수절 부인 마누라야. 니만헌 정렬이 뉘 없으며, 니만헌 수절이 뉘 없으랴?
널로 하여금 육방이 송동, 각청 두목이 다 죽어난다.
들어가자, 나오느라.”
춘향이 기가 막혀
“아이고 여보 행수 형님,
형님과 나와 무슨 혐의가 있어 사람을 부르면 조용히 못 부르고
화젓가락 끝마디 틀듯 뱅뱅 틀어 부르는가?
마소 마소 그리 마소.”
[아니리]
행수기생이 춘향을 대면허여서는
“여보소, 춘향 동생 염려 말게. 내가 들어가서 다 조치험세.”
이렇듯 말허여 놓고 동헌을 들어가서는
춘향을 먹기로 드는디 대톱 이상으로 먹것다.
“‘사또가 부르시면 사령이 나올 텐디 어찌 자네가 나왔는가’
허고 목을 비어 갔으면 갔지 영으로는 못 간다 허옵디다.”
사또 분을 내어
“어허, 그런 요망헌 년이 있단 말이냐?
잔말 말고 빨리 잡어 드려라.”
이제는 사령이 나가는디,
[중중모리]
군로 사령이 나간다. 사령 군로가 나간다.
산수털 벙거지 남일광단 안을 올려
날랠 ‘용’ 자 떡 붙여 늘어진 쇠사슬을 허리 아래다가 늦게 차고
층층거리고 나간다.
“이 애 김 번수야!”
“왜야?”
“이 애 박 번수야!”
“왜 부르느냐?”
“걸리었다, 걸리어.”
“게, 뉘귀가 걸려야?”
“춘향이 걸렸다.
옳다! 그 제기 붙고 발기 갈 년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우리를 보면 초리로 알고 당혜만 좔좔 끌고 교만이 너무 많더니 잘되고 잘되었다. 사나운 강아지 범이 물어가고 물도 가뜩 차면 넘느니라.”
두 사령이 분부 듣고 안올림 벙치를 제쳐 쓰고,
소소리 광풍 걸음 제를 걸어 어칠 비칠 툭툭 거려 춘향 문전을 당도허여
“이 애 춘향아 나오너라!” 부르난 소리 원근 산천이 떠드렇게 들린다. “
사또 분부가 지엄허니 지체 말고 나오너라.”
[창조]
그때여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군로가 오는지 아무런 줄 모르고 울음을 우난디,
[중모리]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바람도 수여 넘고, 구름도 수여 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다 수여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하날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일도 보련마는,
우리 임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간디 이다지 못 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동풍 연자 되어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여 볼까?
뉘 년의 꼬염을 듣고 여영 이별이 되랴는가?
어쩔거나 어쩔거나 아이고 이를 어쩔거나?”
아무도 모르게 설리 운다.
[아니리]
이렇듯 울고 있는데 향단이가 들어서며,
[창조]
“아이고 아씨 야단났소
장방청 사령들이 동동이 늘어서
[아니리]
오느냐 가느냐 야단났소.”
춘향이 그제서야 깜짝 놀래 나오난디,
[단중모리]
“아차, 아차, 아차 내 잊었네.
오날이 제 삼일 점고날이라더니 무슨 야단이 났나부다.
내가 전일에 장방청 번수에게 인심을 많이 잃었더니 혼초리나 받으리다.”
제자 다리 걸었던 유문지유사로 머리를 바드득 졸라매고 나간다,
나간다, 사령을 둘리러 나가는구나.
“허허, 김 번수 와 계시오?
이번 신연에 가셨드라더니 노독이나 없이 다녀오며,
새 사또 정사가 어떠허오?”
우수를 선뜻 내어 김 번수 손길을 부여잡고 좌수를 선뜻 들어 박 번수 손길 잡고, “이리 오오, 이리 와.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 밖에 서서 주저만 허는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내 방으로만 들어가세”
[아니리]
사령들이 춘향의 손이 몸에 오니 마음이 춘삼월 얼음 녹듯 스르르르 풀렸구나!
“놓아두소, 들어감세.”
춘향이 들어가 술 한 상 차려 내노니 한 잔씩 썩 잘 먹었구나!
“여보게 춘향 각시,
사또께서 분을 내어 육방이 송동되었으니
자네가 아니 들어가고 보면 우리 사령들의 신세가 말이 아닐세.”
춘향이 이 말 듣고 돈 석 냥씩 내어주며,
[창조]
내가 가기는 같이 갈 터이니 한때 주채나 하사이다.
[아니리]
박 번수가 돈을 보더니,
[중모리]
“여보소, 이 돈이 웬 돈인가?
여보소, 이 돈이 웬 돈인가? 유전이면 가사귀란 말은 옛글에도 있거니와,
자네와 우리가 한 문간 구실허며 유전이라니 웬 말인가?
들여 놓소 들여 놓소.
들여 노라면 들여 놓소.”
[아니리]
앞으로는 반 뼘씩 나가고 제 앞으로는 오 뼘씩 바싹바싹 긁어 댕기것다.
김 번수가 박 번수의 귀에 대고
“아따 새 사또 첫 마수붙임이니 그대로 뒤에 차게.”
두 사령들이 돈 한 꿰미씩을 들고 돈타령을 허는디,
[중중모리]
“돈 봐라, 돈 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 절씨구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아니리]
이리하여 춘향이 하릴 없이 사령 뒤를 따라가는디,
[세마치]
사령 뒤를 따라간다. 울며불며 건너갈 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삼태육경, 좋은 집에 부귀영화로 잘 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 허여 이 지경이 웬일이여,
국곡투식 허였느냐?
부모 불효를 허였는가?
형제 있어 불목을 허였느냐?
살인강도 아니어든 이 지경이 웬일이여?”
종루를 당도허니 재촉 청령사령들이 동동이 늘어서서,
신도지초라 오죽 떠벌였겄나?
산수털 전립 운월, 증자 채상모 날랠 ‘용’ 자 떡 붙이고,
한 죽은 느리 치고 한 죽 제쳐,
소소리 광풍 걸음 제를 걸어 어칠 비칠 툭툭거려 오느냐?
남전대띠가 파르르르, 장사대가 꼿꼿, 종루가 울긋불긋,
엄명이 지엄허니 춘향이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신세야! 제 낭군 수절헌 게 그게 무슨 죄가 되어
이 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울며불며 들어간다.
[아니리]
춘향이 상방에 들어가 아미를 단정히 숙이고 앉었을 제
사또가 춘향이를 보더니 좋은 곡식 추듯 허는구나.
“어디 보자. 그것 잘되었다.
어여뿌다 어여뻐.
계집이 어여뿌면 침어낙안헌단 말은 과히 춘 줄 알았더니
폐월수화 하던 태도 오날 너를 보았구나!
설도문군 보랴 허고 익주자사 자원허여 삼도몽을 꾼다더니,
나도 네 소문이 하 장허여 밀양 서흥 마다허고 간신히 서둘러 남원 부사 허였제. 너 같은 저 일색을 봉지는 띠였으나, 녹엽성음자만지가 아직 아니 되었으니,
호주탄화 말을 허던 두목지에 비허면 나에게는 다행이다.
니가 고서를 읽었다 허니 옛 글을 들어 보아라.
식국 부인은 초왕의 첩이 되고, 범신예양은 지백을 섬겼으니,
너도 나를 섬겼으면 예양충과 같을지라.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련님이 네 머리를 얹었기로 청춘공방 헐 수 있나?
응당 애부가 있을 테니, 관속이냐 한량이냐 건달이냐?
어려워 생각 말고 바른대로 일러라.”
[창조]
춘향이 이 말을 듣고 여짜오되,
“올라가신 도련님이 무심허여 설령 다시 안 찾으면,
반첩여의 본을 받어 옥창형영 지키다가
이 몸이 죽사오면 황릉묘를 찾아가서 이비혼령 모시옵고,
반죽지 저문 비와 창오산 밝은 달에 놀아 볼까 허옵난디,
관속, 한량, 애부 말씀, 소녀에게는 당치 않소.”
[아니리]
사또 이 말을 들으시고 기특타 칭찬 후에 내어 보냈으면 관촌무사 좋을 텐디,
생긴 것이 하 어여뿌니 ‘절’ 자 하나를 가지고 얼러 보난디,
“허허, 이런 시절보소.
내 분부 거절키는 간부 사정이 간절허여 필은곡절이 있는 터이니,
네 소위 절절가통 형장 아래 기절허면 네 청춘이 속절없지.”
춘향이 이 말 듣고 악정으로 아뢰난디,
[단중모리]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불경이부절을 본받고자 허옵난디
사또도 난시를 당하면 적하의 무릎을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잇가?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천기 자식이라 그리 마오.
어서 급히 죽여주옵소서.”
[아니리]
사또 이 말 듣고 분을 내어
“허허 이런 요망헌 년이 있드란 말이냐?
여봐라, 이 년을 빨리 끌어 내려라!”,
“예이.”
[휘모리]
골방의 수청통인, 우루루루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루 감어 쥐고,
“급창!”
“예이!”
“춘향 잡어 내리랍신다!”
“예이!”
“사령!”
“예이!”
“춘향 잡어 내리랍신다.”
“예이!”, 뜰 밑 아래 두 줄 사령 벌떼 같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상전시정 연줄 감듯, 팔보대단 비단 감듯,
사월 팔일 등대 감듯, 오월 단옷날 그넷줄 감듯,
에후리쳐 감아 쥐고 길 너룬 칭계 아래 동댕이쳐 내끌며
“춘향 잡어 내렸소!”
[아니리]
“여봐라, 형리 부르라!”
“예, 형리 대령이오.”
“형리 들어라,
저 년이 하 예쁘게 생겼기로 수청 들라 허였더니,나를 역모로 모는구나,
여봐라, 춘향이 다짐받어 올려라.”
형리가 들어서 다짐 사연 쓴 연후에,
“춘향이 다짐 사연 분부 뫼어라.
살등여의등이 창가의 소부로, 부종관장지엄령허고 능욕존전 허였으니,
죄당만사라.”
급창 불러 던져주며,
“춘향이 다짐받어 올려라.”
[창조]
춘향이 붓대를 들고 사지를 벌벌벌벌벌 떠는디,
사또가 무서워 떠는 것도 아니요, 죽기가 서러워 떠는 것도 아니요,
한양 서방님 못 보고 죽을 일과 칠십 당년 늙은 노모 두고 죽을 일을 생각허여
일신수족을 벌벌벌벌 떨며 한 ‘일’ 자 마음 ‘심’ 자로 드르르르 긋고,
[진양조]
붓대를 땅으다 내던지더니 요만허고 앉었구나.
[아니리]
급창이 다짐받어 올리니 사또 보시고
“네 년의 일심이 얼마나 굳은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여봐라!
저 년을 동틀 위에 올려 매고 바지 가래 훨씬 걷어 동틀다리 암냥허여 묶은 후에, 집장사령 분부 뫼어라.
일호 사정 두었다가는 주장대로 찌를 테니 각별히 매우 치렸다.”
“예이! 저만헌 년을 무슨 사정을 두오리까?
대매에 뼈를 빼오리다.”
[진양조]
집장사령 거동을 보아라.
형장 한 아름을 덥쑥 안어다가 동틀 밑에다 촤르르르르 펼쳐 놓고
형장을 고르는구나.
이놈도 잡고 늑끈 능청, 저놈도 잡고 늑끈거려 그 중의 등심 좋은 놈 골라 쥐고,
사또 보는 데는 엄명이 지엄허니 갓을 숙이어 대상을 가리고,
춘향다려 속말을 헌다.
“이 애, 춘향아 한두 대만 견디어라.
내 솜씨로 넘겨 치마. 꼼짝꼼짝 말어라. 뼈 부러지리라.”
“매우 쳐라!”
“예이!”
딱 부러진 형장 가지는 공중으로 피르르르 대뜰 위에 떨어지고,
동틀 위의 춘향이는 토심스러워 아프단 말을 아니 허고 고개만 빙빙 두르며
“‘일’ 자로 아뢰리다.
일편단심 먹은 마음 일부종사 허랴는디, 일개형장이 웬일이오?
어서 급히 죽여주오.”
“매우 쳐라!”
“예이!”
“딱!”
“둘이요.”
“이부불경 이 내 마음, 이군불사 다르리잇가?
이비사적을 알았거든 두 낭군을 섬기리잇가?
가망 없고 무가내요!”
“매우 쳐라.”
“예이!”
"딱!
삼가히 조심하라”
“삼생가약 맺은 언약, 삼종지법을 알았거든
삼월화류로 알지 말고 어서 급히 죽여주오.”
‘사’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사대부 사또님이 사기사를 모르시오?
사지를 찢드래도 가망 없고 무가내요.”
‘오’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오마로 오신 사또, 오륜을 밝히시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오실 날만 기다리오.”
‘육’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육부에 맺힌 마음 육시를 허여도 무가내요.”
‘칠’ 자 낱을 딱 붙여노니,
“칠척장검 높이 들어 칠 때마다 동강나도 가망 없고 무가내요.”
‘팔’ 자 낱을 딱 붙여노니,
“팔방부당 안 될 일을 위력권장 고만 허고 어서 급히 죽여주오.”
‘구’ 자 낱을 딱 붙여노니,
“구곡간장 맺은 언약 구사일생을 헐지라도 구관 자제를 잊으리잇가?
가망 없고 무가내요.”
‘십’ 자를 붙여노니,
“십장가로 아뢰리다.
십실 적은 고을도 충렬이 있삽거든, 우리 남원 너룬 천지 열행이 없으리잇가?
나 죽기는 섧잖으나 십맹일장 날만 믿는 우리 모친이 불쌍허오.
이제라도 어서 죽어 혼비중천의 높이 떠서
도련님 잠든 창전의 가 파몽이나 허고지고.”
[중모리]
열을 치고 그만둘까, 스물을 치고 짐작헐까?
삼십도를 맹장허니 옥루화연 흐르난 눈물 진정헐 수 바이 없고,
옥 같은 두 다리에 유수같이 흐르난 피는 정반의 진정이라.
엎졌던 형방도 눈물짓고, 매질허던 집장사령도 매 놓고 돌아서며 도포자락 끌어다 눈물 흔적 씻으면서 발 툭툭 구르며,
“못 보겄네, 못 보겄네,
사람의 눈으로 못 보겄네.
삼십 년간 관문 출입 후에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네.
내일부터는 나가 문전걸식을 허드래도
아서라, 이 구실을 못 허겄네.”
[단중모리]
남원 한량들이 구경들 허다 아서라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 눈으로 못 보겄네. 어린 것이 설령 잘못 헌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집장사령 놈을 눈 익혀 두었다가 삼문 밖에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모지도다. 모지도다. 우리 골 사또가 모지도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간다 간다 떨떠리고 내 돌아간다.
[아니리]
춘향을 큰칼 씌워 장방청에 내쳐노니,
그때의 춘향 모친이 춘향이 매를 맞아 죽게 되었단 말을 듣고 실성발광으로 들어오난디,
[자진중중모리]
춘향 모친이 들어온다.
춘향 모친이 들어온다.
춘향이가 죽다니, 춘향이가 죽었다네.
장방청 들어서니 춘향이 기절허여 정신없이 누웠구나!
춘향 모친 기가 막혀, 그 자리 엎드러지더니
“아가, 춘향아!
이 죽엄이 웬일이냐?
남원 사십팔 면 중에 내 딸 누가 모르는가?
질청의 상전님네, 장청의 나리님네, 내 딸 춘향 살려주오.
제 낭군 수절헌 게 그게 무슨 죄가 되어 생죽엄을 시키시오?
나도 마저 죽여주오!”
여광여취 울음 울 제 목제비질을 덜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죽기로만 작정을 허는구나!
[아니리]
그때의 교방청 여러 기생들이 이 소문을 듣고 서로 부르며 들어오난디,
[단중모리]
여러 기생들이 들어온다.
여러 기생들이 들어온다.
서로 부르며 들어오난디,
“아이고, 형님! 아이고, 아짐! 동생!
춘향이가 매를 맞고 생죽엄을 당했다네.
아이고 불쌍허고 아까워라. 어서 가서 청심환 갈아라.”
끼리끼리 동지끼리 천방지축에 들어올 제,
어떠한 기생 하나는 추세를 따라 부르는구나!
“아이고 서울집! 춘향이가 매를 맞고 거의 죽게 되었으니,
노모 신세를 어쩔라고 이 죽엄이 웬일이오?”
서로서로 자탄헐 제 또 어떠한 기생 하나는 선춤을 추면서 들어오는구나!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여러 기생들이 어이없어,
“아이고 저 년 미쳤구나!
춘향과 너와 무슨 혐오 있어 저 중장을 당했는디 춤을 추니 웬일이냐?”
“너의 말도 옳거니와 이 내 말을 들어봐라.
진주에 의암 부인 나고, 평양에 월선 부인 나고,
안동 기생 일지홍, 산 열녀문 세워 있어 천추유전 허여 있고,
선천 기생 아해로되, 칠거학문 들어있고,
청주 기생 화월이난 삼층각에 올랐으니,
우리 남원 대도 관내 충렬이 업삽다가 춘향이가 열녀 되어
우리도 이번 남원 좋은 골에 현판감이 생겼으니 어찌 아니 좋을쏘냐?
노모 신세는 불쌍허나 죽을 테면 꼭 죽어라.
얼씨구나 좋을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중모리]
사정이난 춘향을 업고,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 모친 여러 기생들은 뒤를 따라 옥으로만 내려갈 제
춘향 모친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신세야. 아곡을 여곡 헐 디,
여곡을 아곡 허니 내 울음을 누가 울며,
아장을 여장 헐 디, 여장을 아장 허니 내 장사를 누가 헐거나?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이 원수로구나.
네가 만일 죽게 되면, 칠십당년 늙은 내가 누구를 믿고 살으라고?”
그렁저렁 길을 걸어 옥문간 당도허니,
사정이 춘향을 옥에 넣고 옥쇠를 절컥 절컥 채워놓니
십오야 둥근달이 떼구름 속에 잠겼구나!
[아니리]
그때의 춘향 모친과 향단이는 여러 기생들 앞세워 집으로 돌아가고,
춘향이 홀로 옥방에 앉아 신세장탄으로 울음을 우난디,
[세마치]
“옥방이 험탄 말은 말로만 들었더니 험궂고 무서워라.
비단보료 어디 두고 헌 공석이 웬일이며,
원앙금침 어디 두고 짚 토매가 웬일인고?
천지 생겨 사람 나고 사람 생겨 글자낼 제,
뜻 ‘정’ 자 이별 ‘별’ 자는 어느 누가 내셨던고?
이 두 글자 내인 사람은 날과 백년 원수로다.”
울며불며 홀연히 잠이 들어,
장주가 호접 되고 호접이 장주 되어 편편히 날아가니
반반혈루 죽림 속에 두견이 오락가락, 귀신은 좌림허고,
적적한 높은 집이 은은히 보이난디,
황금대자로 새겼으되, ‘만고열녀 황릉묘’라 둥두렷이 걸렸거날,
이 몸이 황홀허여 문전의 배회헐 제, 녹의 입은 두 여동이 문 열고 나오며 춘향 전 예하여 여짜오되,
“낭랑께서 부르시니 나를 따라 가사이다.”
춘향이 여짜오되,
“미천한 소녀몸이 우연히 이곳에 와 지명도 모르난디
어떠허신 낭랑께서 나를 알고 부르리까?”
“가서 보면 알 것이니, 어서 급히 가사이다.”
여동 뒤를 따라 내전에 들어가니,
무하운창 높은 집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문 열고 나오며 춘향 보고 반기허여,
“네 비록 여잘망정 고금 사적 통달허여,
요녀순처 아황 여영 우리 형제 있는 줄은 너도 응당 알리로다.
이 물은 소상강, 이 숲은 반죽이요, 이 집은 황릉묘라.”
동서묘의 앉은 부인 천만고 효부 열녀로다.
너도 절행이 장하기로 인간 부귀 시킨 후에 이리 다려올까 허여,
서편의 빈 교가 너 앉을 자리로구나!
오날 너를 청하기는, 연약한 너의 몸에 흉사가 가련키로 구완 차 불렀노라.
이것을 먹으면 장독이 풀리고 아무 탈이 없으리라.”
술 한 잔, 과실 안주, 여동 시켜 주시거늘 돌아 앉어 먹은 후에,
낭랑이 분부허시되,
“너의 노모 기다리니 어서 급히 나가 보아라.”
춘향이 사배 하직허고 깜짝 놀래 깨어보니,
황릉묘는 간 곳 없고 옥방에 홀로 누웠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부인 모시고 황릉묘나 지킬 것을
이 지경이 웬일이여.”
[중모리]
춘향 형상 가련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 지고, 보고 지고,
보고 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 지고,
서방님과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연이신혼 금슬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 추월같이 번듯이 솟아서 비치고저.
막왕막래 막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꿀 수 있나?
손가락의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허고,
간장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 볼까?
이화일지춘대우로 내 눈물을 뿌렸으니
야우문령단장성에 비만 많이 와도 임의 생각
녹수부용채련녀와 제롱망채엽의 뽕 따는 여인들도 낭군 생각 일반이라.
날보다는 좋은 팔자. 옥문 밖을 못 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려나?
내가 만일에 도련님을 못 보고 옥중고혼이 되거드면
무덤 근처 섰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방성통곡의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닷이 세월을 보낼 적에,
[자진모리]
그때의 도련님은 서울로 올라가 글공부 힘을 쓸 제,
춘추사략 통사기, 사서삼경, 백가어를 주야로 읽고 쓰니,
동중서문견이요, 백낙천 계수로다.
금수강산을 흉중에 품어두고 풍운월로를 붓끝으로 희롱헐 제,
국가 태평허여 경과 보실 적의 이 도령 거동 보소.
장중의 들어가니 백설백목 차일장막 구름같이 높이 떴다.
어탑을 앙면허니 홍일산, 홍양산, 봉미선이 완연허구나!
시위를 바라보니, 병조판서 봉명기, 도총관, 별련 군관, 승사각신이 늘어섰다.
중앙의 어영대장, 선상의 훈련대장, 도감중군 칠백 명,
삼영군의 자개창 일광을 희롱헐 제,
억조창생 만민들, 어악풍류 떡 쿵. 나누나 지누나,
앵무새 춤추난 듯, 대제학 택출허여 어제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 내어 포장 우에 번뜻, 글제에 허였으되,
‘일중광 월중륜 성중휘 해중윤’이라, 둥두렷이 걸렸거날,
이 도령 거동보소,
시제를 펼쳐 놓고 해제를 생각허여 용지연의 먹을 갈아
당황모무심필 일필휘지 지어내어 일천의 선장허니,
상시관이 글을 보시고 칭찬허여 이른 말이,
“문안도 좋거니와 자자비점이오, 구구마다 관주로다.”
장원급제 방 내거니,
“이몽룡 신래이! 신래이,”
정원 사령이 나온다.
정원 사령이 나와 청철릭 앞에 치고 자 세 치 긴 소매를 보기 좋게 활개를 쳐,
장원 연못가의 참나무쟁이를 뒤얹혀,
“이준상 자제 이몽룡, 이몽룡!”
이렇듯 외난 소리 장중이 뒤집혀 춘당대 떠나간다.
선풍도골 이몽룡 세수를 다시 허고, 도포 떨어 다시 입고,
정원 사령 부액허여 신래진퇴헌 연후,
어주삼배 내리시니 황송히 받어 먹고 천은을 배사 허고 계하로 나가실 제,
머리 우엔 어사화요, 몸에난 청포흑대, 좌수옥홀이요, 우수홍패로다.
금의화동은 쌍제를 띠었는디, 누하문 밖 나가실 제
청노새 비껴 타고 장안 대도상으로 이리 가락 저리 가락,
노류장화는 처처에 자잤는디,
고사당참알 허고, 부모 전 영화허니,
세상에 좋은 것은 과거밖에 또 있느냐?
초입사 한림, 주서, 대교로 계실 적에,
그때 나라 경연 들어 전라 어사를 보내시는구나!
이몽룡 입시 시켜 봉서 한 벌 내어주시니 비봉에 호남이라.
사책, 유척, 마패, 수의를 몸에 입고, 본댁에 하직허고 전라도로 내려간다.
[휘모리]
남대문 밖 썩 내달아 칠패, 팔패, 청패, 배다리, 애고개를 얼른 넘어,
동작강 월강, 사그내, 미륵당이, 골사그내를 지내어
상류천, 하류천, 대황교, 떡점거리, 오무장터를 지내어
칡원, 소사, 광정, 활원, 모로원, 공주, 금강을 월강허여,
높은한질, 널재, 무네미, 노성, 풋개, 닥다리, 황화정이, 지아미 고개를 얼른 넘어 여산읍을 당도허였구나!
[아니리]
그때의 어사또는 여산이 전라도 초입이라 서리 역졸을 각 처로 분발헐 제,
[자진모리]
“서리!”
“예이!”
“너희들은 예서 떠나 우도로 염문허되,
예산, 익산, 함열, 옥구, 김제, 태인으로 돌아,
내월 십오일 오시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예이!”
“역졸!”
“예이!”
"너희들은 예서 떠나 좌도로 염문허되,
고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으로 돌아
광양, 순천, 흥양, 낙안, 보성, 장흥, 강해남, 진수령을 넘어,
영암, 나주, 무안, 함평, 화순, 동복, 광주로 염문허되
국곡투식 허는 놈, 부모불효 허는 놈, 형제화목 못 허는 놈,
술 먹고 취주잡담, 피색을 범하는 자, 낱낱이 적발허여
내월 십오일 오시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예이! 그리하오리다.”
[중모리]
좌우도로 분발허고 어사 행장을 차리는구나!
과객 맵시를 차리는구나.
질 너룬 제량갓에 죽영 갓끈을 달아 쓰고,
살춤 높은 김제 망건, 당팔사 당줄을 달아서 두 통 나잖게 졸라매고,
수수한 삼베 도복 분합대를 둘러 띠고,
사날 초신, 길 보신에 고운 때 묻은 세살부채, 진짜 밀화 선초를 달아서
횡횡 두르며 내려올 제, 어찌 보면 과객 같고,
또 어찌 보면 공명을 하직허고 팔도를 두루 다니면서 친구를 사귀랸 듯,
썩 몰라보게 꾸몄난디,
인적적 노중에는 마상으로 오시다가, 광야 너룬 행로에는 인마는 뒤에 세우고
완보로 내려올 제, 전라 감영을 들어가서 선화당 구경허고,
남원 주인을 찾어가서 종두지미를 안 연후에 임실읍을 얼른 넘어 노구바위를 올라서서 보니 여기서부터는 남원 땅이라.
[아니리]
이때는 어느 땐고 허니 오뉴월 농번시절이라.
각댁 머슴들이 맥반맥주를 배불리 먹고 상사 소리를 맞어 가며 모를 심는디,
[중모리]
“두리둥둥 두리둥둥
께갱매 깽매 깽매 어럴럴럴 상사뒤어.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전라도라 허는 디는 신산이 비친 곳이라.
저 농부들도 상사 소리를 메기면서 각기 저정거리고 더부렁거리네,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한 농부가 썩 나서더니 모포기를 양 손에 갈라 쥐고 엉거주춤 서서 메기는구나! “신농씨 만든 쟁기, 고운 소로 앞을 내어 상하평 깊이 갈고,
후직의 본을 받어 백곡을 뿌렸으니, 용성의 지은 책력 하시절이 돌아왔네.”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어럴럴럴 상사뒤어.”
“이마 우에 흐르는 땀은 방울방울 향기 일고
호미 끝에 이르난 흙은 댕이 댕이 댕이 황금이로구나!”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묻어 들어온다.
우장을 허리 두르고 삿갓을 써라.”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어화 농부들 말 들어요.
돋는 달 지는 해를 벗님의 등에 실코 향기로운 이 내 땅에
우리 보배를 가꾸어 보세.”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인정전 달 밝은 밤 세종대왕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 솔은 산신님의 놀음이요,
오뉴월이 당도허면 우리 농부 시절이로다! 패랭이 꼭지에 가화를 꽂고서
마구잽이 춤이나 추어보세.”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아니리]
여보시오 여러 농부들 이렇게 심다가는 몇 날이 걸릴지 모르겄네,
조금 자조자조 심어 봅시다. 그래 봅시다.
[중중모리]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운담풍경근오천의 방화수류허여 전천으로 내려간다.”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여보소, 농부들 말 듣소.
어화 농부들 말 들어.
돌아왔네, 돌아와. 풍년 시절이 돌아와.
금년 정월 망월달 선원사를 높이 떠 백공봉에 솟았구나!”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다 되었네 다 되어,
서 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지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로다.”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이 모 심어 다 끝내면 초벌 두벌 세벌 맨 후
잠우라기 결실되어 황황히 익은 후에 우걱지걱 거둬들여 가상질 탕탕허여
물 좋은 수양수침 떨끄덩 떵 찧어다가
상위부모 하위처자 함포고복의 놀아보세”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내렸다네, 내렸다네.”
“아니 뭣이 내려야?”
“전라어사 내렸다네.”
“전라어사가 내렸으면 옥중 춘향이 살었구나.”
“어화 어여루 상사뒤여.”
“떠들어온다 점심 바구니 떠들어온다.”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자진모리]
“다 되어간다,
다 되어간다.”
“어러럴럴 상사뒤어.”
“이 논배미를 어서 심고.”
“어러럴럴 상사뒤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어러럴럴 상사뒤어.”
“풋고추 단 된장에 보리밥 쌀밥 많이 먹고.”
“어러럴럴 상사뒤어.”
“꺼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러럴럴 상사뒤어”
“이러고 저러고 어쩌고 저쩌고 새끼 농부가 또 생긴다.”
“어러럴럴 상사뒤어”
[단중모리]
“어화 어여루 상사뒤어.”
[아니리]
어사또가 이곳에 당도허여,
“여러 농부들 수고 허시오,
농부 중 좌상이 뉘시오?”
한 농부 썩 나서며,
“거 좌상 찾으셨소?
내가 좌상이오마는 댁의 거주성명은 무엇이오?”
“예, 이리 저리 떠도는 과객이 무슨 거주가 있으리오마는
그저 이서방이라 허오. 좌상의 성명은 무엇이오?”
“나는 태서방이오.”
어사또 들으시고
“그렇지. 남원에는 진진방태가 많이 살것다.
그럼 고을 일도 잘 아시겄소.”
“우리네 농부가 무엇을 알 것이오마는,
들은 대로 말을 허자면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 듯 헌다 헙디다.”
“아니 어찌하여 그렇단 말이요.”
“예 말이 났으니 말이지,
원님은 주망이요, 책실은 노망이요, 아전은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라,
이리해서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듯헌다 헙디다.”
“예, 이 고을 정사도 말이 아니구려.
이왕에 말이 났으니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남원의 성춘향이가 어찌 되었는지?”
“예, 성춘향이로 말헐 것 같으면 구관 자제 도련님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에
지금 수절을 허고 있난디,
뜻밖에 신관 사또가 내려와서 수청을 아니 든다 허여 중장을 때려 옥에 가뒀는디, 내일 본관 사또 생신 잔치 끝에 춘향을 잡아다 죽인다 헙디다.”
어사 들으시고 깜짝 놀라 춘향 일이 급했다는 듯이 농부들과 작별을 허고 한 모롱이 돌아드니,
[창조]
그때의 춘향이난 옥방에 홀로 앉아 한양에 편지 써서 지자 시켜 보내는구나!
[진양조]
이팔청춘 총각 아이가 시절가 부르며 올라온다.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갈거나,
한양 성중을 어이 가리?
오늘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기 가서 잠을 잘거나?
자룡 타고 월강허던 청총마나 있거드면 이날 이시로 가련마는
몇 날을 걸어서 한양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한양 성중을 어이 가리?
내 팔자도 기박허여 길품팔이를 허거니와 춘향 신세도 가련허네.
무죄한 옥중 춘향이 명재경각이 되었난디,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몽룡씨 어찌 이리 못 오신고?”
[아니리]
어사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저 애가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한양을 가는 방자놈이로구나!
어사또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얘야, 너 이리 좀 오너라!”
아이가 돌아다보며,
“아니 바쁘게 가는 사람 어찌 부르오?”
“이 애, 너 이리 좀 오너라. 너 지금 어디 사느냐?”
“나요. 다 죽고 나 혼자 사는 디 사요.”
“허허, 그럼 너 남원 산단 말이로구나!”
“허허, 그 당신 알아 맞히기는 바로 오뉴월 쉬파리 똥 속이오.”
“네 이놈! 고얀 놈이로고.
그래, 너 지금 어디 가느냐?”
“허허 말이 났응깨 말이지마는
남원에 성춘향 편지 가지고 한양 묵은 댁에 가요.”
“허허 그론 어긋지기는 제족 이상이로고.
너 한양 구관댁에 간단 말이로구나.”
“허허, 그 당신 알아맞히기는 바로 칠팔월 귀뜨래미시그려.”
“네 이놈, 고얀 놈이로고.
이 애, 그럼 너 갖고 가는 그 편지 내가 좀 보면 안 되겄느냐?”
방자 기가 막혀
“뭐요, 여보시오.
아니 남의 남자 편지도 함부로 못 헐 텐디
남의 여자 은서를 함부로 대로변에서 보잔 말이요?
예끼 여보시오. 이 양반아.”
“네 이놈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옛 글에 허였으되, 부공총총설부진허여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라 허였으니,
잠깐 보고 돌려주면 안 되겄느냐?”
“허허 이사람 보소.
아 꼴불견일세. 껍닥보고 말을 들어보니 문자 속이 기특허네그려.
허허 이 사람 내가 꼭 안 보여 줄라고 허였는디,
당신 문자 속이하도 기특허여 보여주는 것이니 얼른 보고 봉해 주시오.”
어사또 편지 받아 들고
“네이놈! 너는 저만치 한쪽에 가만히 있거라.”
그 편지에 허였으되,
[창조]
“별후광음이 우금삼재에, 척서가 단절허여 약수 삼천리에 청조가 끊어지고.
북해만리에 홍안이 없어매라.
천애를 바라보니 망안이 욕천이요, 운산이 원격허니 심장이 구열이라.
이화에 두견 울고 오동에 밤비 올 제,
적막히 홀로 누어 상사일념이 지황천로라도 차한은 난절이라.
무심헌 호접몽은 천 리에 오락가락, 정불자억이요, 비불자승이라.
호읍장탄으로 화조월석을 보내더니,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수청 들라 허옵기에,
저사모피 허옵다가 모진 악형을 당허여,
미구에 장하지혼이 되겠사오니,
바라건대 서방님은 길이 만종록을 누리시다가
차생에 미진한을 후생에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사사이다.”
[중모리]
편지 끝에다 ‘아’ 자를 쓰고,
‘아’ 자 밑에다 ‘고’ 자를 쓰고,
무명지 가락인지 아드드드득 깨물어서
평사낙안 기러기 격으로 혈서를 뚝뚝 뚝 찍었구나!
“아이고, 춘향아. 수절이 무슨 죄가 되어 네가 이 지경이 웬일이냐?
나도 너와 작별허고 독서당 공부허여 불원천리 예 왔는디,
네가 이 죽음이 웬일이냐?”
편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아이고 춘향아, 이를 장차 어쩔거나.”
방성통곡의 울음을 운다.
[아니리]
그때여 방자가 어사또를 몰라봤다 허되
수 년 동안 책방에 모시고 있었으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자세히 살펴보니 책방에 모시던 서방님이 분명쿠나.
그 일이 어찌 될 일이냐?
[창조]
“아이고 서방님.”
[단중모리]
“소인 방자놈 문안이요.
대감마님 행차 후의 옥체 안녕허옵시며,
서방님도 먼 먼 길에 노독이나 없이 오시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중모리]
“오냐, 방자야 우지마라.
내 모냥이 이 꼴은 되었으나, 설마 너의 아씨 죽는 꼴을 보겄느냐.
우지 말라면 우지를 마라.
충비로다, 충비로구나. 우리 방자가 충비로구나!”
[아니리]
어사또 생각허기를 저 애가 관물을 오래 먹어 눈치가 비상헌지라,
천기누설 될까 허여 편지 한 장 얼른 써서,
“이 애 방자야. 이 편지 가지고 운봉 영장 전 빨리 올리고 오도록 하여라”
하고 보냈는디,
편지 내용인 즉은 요놈을 멕이기는 잘 멕여주되
며칠 붙들어 놓으란 내용이었다.
방자를 보낸 후에,
[진양조]
박석치를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바라보니,
산도 옛 보던 산이요, 물도 옛 보던 물이로구나.
대방국이 노던 데가 동양물색이 아름답다.
전도유랑금우래의 현도관이 여기련만,
하향도리 좋은 구경 반악이 두 번 왔네,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터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던 곳이로구나.
저 건너 화림 중의 추천 미색이 어디를 갔느냐?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 작별이 몇 해나 되며,
영주각이 섰는 데는 불개청음 허여 있고,
춤추던 호접들은 가는 춘풍을 아끼난 듯,
벗 부르난 저 꾀꼬리 손의 수심을 자아낸다.
황혼이 승시허여 춘향 집을 당도허니,
몸채는 꾀를 벗고 행랑은 찌그러졌구나!
대문에 입춘대길 충효문이라 내 손으로 붙였더니
가운데 ‘중’자는 바람에 떨어지고 마음 ‘심’자만 뚜렷이 남었구나!
[아니리]
어사도 문전에 은신허여 가만히 동정을 살펴보니,
[세마치]
그때의 춘향 모친은 후원의 단을 뭇고
북두칠성 자야반의 촛불을 돋워 켜고 정화수를 받쳐 놓고,
“비나니다. 비나니다. 하느님 전 비나니다.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몽룡씨,
전라 감사나 전라 어사로나 양단간의 수의 허여 옥중 춘향을 살려주시오.
내 딸이 죄가 있소?
부모에게는 효녀요, 가장(家長)으게는 열녀 노릇을 허는디,
효자 충신 열녀부터는 하느님이 아시리라.
향단아! 단상의 물 갈어라.
비는 것도 오날이요, 지성신공도 오날밖으는 또 있느냐?”
향단이도 설워라고 정화수 갈아 받쳐 놓고 그 자리 법석 주저앉어,
“아이고 하느님 아씨가 무슨 죄가 있소?
명천이 감동허여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춘향모 더욱 기가 막혀 우는 향단을 부여안고
“우지 마라 향단아, 우지를 마라.
네 눈에서 눈물이 나면 내 눈에서는 피가 난다.”
향단이는 마님을 붙들고 마님은
향단이 목을 꼭 붙들고 서로 붙들고 울음을 울고
붙들고 말리고 울음을 우는 모냥 사람의 인륜으로는 볼 수가 없네.
[아니리]
그때의 어사또는 이 거동을 보시고,
“허허, 내가 어사허는 것이 선영 덕으로만 알았더니
여기 와서 보니 우리 장모와 향단이 비는 정성이 절반이 넘는구나!
내가 이 모냥으로 들어갔다가는 저 늙은이 성질에 상추쌈을 당할 것인 즉,
잠깐 농을 청할 수밖에 없다”
허고,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이리 오너라!”
춘향모 깜짝 놀래어
[창조]
“아이고 얘, 향단아.
너의 아씨 생목숨이 끊게 되어 그러는지
성주주상이 모두 발동을 허였는가?
[아니리]
바깥에서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구나!
잠깐 나가 보아라.” 향단이 총총 나가더니
“여보세요, 그 누구를 찾으시오?”
“거 마님 잠깐 뵙자고 여쭈어라.”
“마님 어떤 거지같은 분이 마나님을 잠깐 나오시래요.”
“아이구 내가 이렇게 경황이 없는디 어떻게 손님을 맞이헐 수 있겠느냐?
너 나가서 마님 안 계신다고 따 보내라.”
“여보시오. 우리 마님 안 계신다고 따 보내래요.”
“어허 따라는 말까지 다 들었으니 뭐 그렇게 딸 것 없이
잠깐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마님 그 사람이 따라는 말까지 다 들었으니
뭐 그렇게 딸 것 없이 잠깐 나오시래요.”
“아이고 급살 맞을 년아,
네가 그 사람 더러 따라는 말까지 다 했응께 갈 리가 있겄느냐?”
춘향 모친 이 말을 듣더니 형세가 이리 되니 걸인들까지도 조롱을 허는가 싶어
홧김에 걸인을 쫓으러 한번 나가 보는디,
[중중모리]
“어허, 저 걸인아.
물색 모르는 저 걸인. 알심 없는 저 걸인,
남원 부중의 성내성외 나의 소문을 못 들었나?
내 신수 불길허여 무남독녀 딸 하나,
금옥같이 길러 내어 옥중에 넣어두고 명재경각이 되었는디 무슨 정에 동냥!
동냥 없네 어서 가소 어서 가.”
“어허 늙은이 망령.
어허 늙은이가 망령.
동냥은 못 주나마 박쪽조차 깨난 격으로 구박출문이 웬일이여?
경세우경년허니 자네 본 지가 오래여.
세거인두백허니 백발이 완연허니 자네 일이 허허 말 아닐세.
내가 왔네, 내가 왔어.
어허, 자네가 날 몰라?”
“나라니 누구여?
해는 저물어지고, 성부지 명부지 헌디,
내가 자네를 알 수 있나?
자네는 성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사람인가?”
“내 성이 이, 이가라 해도 날 몰라?”
“이 가라니 어떤 이 가여?
성안성외 많은 이 가, 어느 이간 줄 내가 알어?
옳제 인제 내 알었네.
자네가 자네가 군목질도 일쑤 허고
아림아림 멋도 있는 동문 안 이 한량이 아닌가?”
“아 아 아 아니 그 이서방 아니로세.”
“그러면, 자네가 누구여?”
“허허, 장모 망녕,
우리 장모가 망녕.
장모 장모, 장모라 해도 날 몰라?”
“장모라니,
장모라니,
웬말이여?
남원읍내 오입쟁이들 아니꼽고 녹녹허데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공연히 미워허여
내 집 문전을 지나면서 인사 한마디도 아니 허고, 빙글빙글 비웃으며,
“‘여보게, 장모’ 에이! 장모라면 환장헐 줄로. 보기 싫네.
어서 가소, 어서 가.”
“어허, 늙은이 망녕. 우리 장모가 망녕. 장모가 나를 모른다고 허니
거주 성명을 일러 주지. 서울 삼청동 사는 춘향 서방 이몽룡.
그래도 자네가 날 몰라?”
춘향 모친 이 말을 듣고 우르르르 달려들어 사위 목을 부여 안고,
“아이고, 이게 누구여,
아이고 이 사람아 어찌 그리 더디오나?”
[늦은 중중모리]
“왔구나. 우리 사위 왔네!
반갑네, 반가워. 더디 춘풍이 반가워.
가더니마는 여영 잊고 편지 일장이 돈절키로 야속허다고 일렀더니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광풍이 대작터니 바람결에 날려 와?
춘수는 만사택이라더니 물이 깊어서 이제 왔나.
뉘 문전이라고 주저를 허며 뉘 방이라고서 아니 들어오고
문 밖에 서서 주저만 허는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내 방으로 들어가세.”
[아니리]
“이 애, 향단아, 한양 서방님 오셨다. 어서 나와 인사드려라.”
[단중모리]
“소년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마님 행차 후의 기체 안녕허옵시며,
서방님도 먼 먼 길에 노독이나 없이 오시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오냐, 향단아 우지 마라
내 모냥이 이 꼴은 되었으나 설마 너의 아씨 죽는 꼴을 보겄느냐?
우지를 말라면 우지를 마라.”
[아니리]
“이 애, 향단아 그만 울고 시장허다.
밥 있으면 한 술 가져오너라.”
춘향 모친 이 말을 듣더니
“얘. 향단아, 어서 찬수 장만허고, 더운 밥 지어라.
오, 그러고 참 촛불이 급하구나!”
“장모 촛불은 무엇 헐라는가?”
“수년 동안 사위 얼굴을 그리웠더니 사위 얼굴 좀 봐야겄네.”
“아 내일 밝은 날 보소.”
[창조]
“자네는 대장부라 속이 넉넉허여 그러지마는
[아니리]
나는 밤낮 주야로 기다리고 바랐으니 사위 얼굴 좀 봐야겄네.”
향단이 촛불을 들여노니
춘향 모친이 촛불을 들고 사위 몰골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창조]
“허허, 열녀 춘향 서방 꼴 좀 보소.”
[중모리]
들었던 촛불을 내던지더니
“잘되었네. 잘되었네, 잘되었네.
열녀 춘향 신세가 잘되었네.
책방에 계실 때난 보고보고 또 보아도 귀골로만 생겼기에
믿고 믿고 믿었더니 믿었던 일이 모두 다 허사로구나.
백발이 휘날린 년이 물마를 날이 없이
전라 감사나 전라 어사나 양단간에 되어오라 주야 축수로 빌었더니
어사는 고사허고 팔도 상걸인이 다 되었네.”
후원으로 우르르르르르 쫓아 들어가 정화수 그릇을 번뜻 들어
와그르르르르르 탕탕 부딪치니 시내 강변이 다 되었네.
춘향 모친 기가 막혀 그 자리에 주저앉어
“죽었구나, 죽었구나
내 딸 춘향이는 영 죽었네.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이 일을 장차 어쩔거나?”
방성통곡에 울음을 운다.
[아니리]
“여보게 장모, 날로 보고 참소.
그러고 나 시장허니 밥 있으면 한술 주소.”
춘향 모친 기가 막혀
“자네 줄 밥 없네.
자네 줄 밥 있으면 내 옷에 풀해 입고 살겄네.”
향단이 곁에 섰다 민망허여,
[단중모리]
“여보, 마나님 그리 마오. 아씨 정곡 아니 잊고 불원천리 오셨는디 대면박대는 못 허리다.” 부엌으로 들어가 먹던 밥, 제리 짐치, 냉수 떠 받쳐 들고, “여보, 서방님. 여보 서방님. 더운 진지 지을 동안 우선 요기나 허사이다.”
[아니리]
어사또가 밥을 먹는디 춘향 모친 미운 체를 허느라고 휘모리로 따르르르 허니 장단을 맞춰가며 밥을 먹는디 꼭 이렇게 먹는 것이었다.
[휘모리]
원산 호랑이 지리산 넘듯, 두꺼비 파리 채듯,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중 목탁 치듯, 고수 북치듯, 뚜드락 뚝딱 “어허, 참 잘 먹었다.”
[아니리]
춘향모가 어사또 밥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잡것, 밥 많이 빌어먹은 솜씨다. 아니 자네 시방 밥 먹고 있는가? 밥 총 놓고 앉았제.” “내가 책방에 있을 때는 용미봉탕에 잣죽을 먹어도 체기가 있어 속이 껄껄허더니, 아 형세가 이리 되니 그냥 무쇠토막을 끓어 넣어도 춘삼월 얼음 녹듯 허내그려. 근디, 아까 시장헐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더니 오장단속을 허고 나니 춘향 생각이 나네. 춘향이 어디 있는가?,” “뭣이 어쩌! 춘향이 죽고 없네.” “아까 후원에 단 뭇고 살려 달라 빌던 것은 춘향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향단이 곁에 섰다 “서방님, 바루나 치거든 가사이다.” “옳아! 바루를 쳐야 되느냐, 거참 절차 많구나.” 때마침,
[진양조]
초경, 이경, 삼사오경이 되니 바루난 뎅 뎅 치난디 옥루는 잔잔이라. 향단이는 등롱을 들고 춘향 모친은 미음 그릇을 들고 걸인 사위는 뒤를 따라 옥으로 내려갈 제, 밤 적적 깊었난디, 인적은 고요허고 밤 새 소리는 부욱부욱 도채비들은 휘이휘이, 바람은 우루루루 쇠 지동치듯 불고, 궂은비는 퍼붓난디, 사방에서 귀신소리가 들리난디 이히 이히히히 이히 이히히히 아이고 아이고. 춘향모 더욱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신세야 아곡을 여곡 헐 디, 여곡을 아곡 허니 내 울음을 누가 울며, 아장을 여장 헐 디, 여장을 아장 허면 내 장사를 누가 헐거나?” 그렁저렁 옥문거리를 당도허여 “옥형방! 옥형방!” 옥형방이 대답이 없네. “사정이, 사정이!” 사정이도 대답이 없네. “아이고, 이 원수 놈들. 또 투전허러 갔구나. 아가, 에미 왔다 정신 차려라.” 그때의 춘향이난 내일 죽을 일 생각허여 칼머리 베고 누웠다가 홀연히 잠이 들어, 비몽사몽간에 남산 백호가 옥담을 뛰어 넘어 들어와 주홍입 쩍, 으르르르르 어헝! 깜짝 놀래 깨어보니 무서운 마음이 솟구치고, 몸에서 땀이 주루루루, 가슴이 벌렁벌렁, 부르는 소리가 얼른얼른 들리거늘, 모친인 줄은 모르고 귀신소리로 짐작허고, “야 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어 갈랴거든 조르지 말고 잡아가거라. 내가 무슨 죄 있느냐? 나도 만일에 이 옥문을 못 나가고 이 자리에서 죽게가 되면 저것이 모두 내 벗이로구나!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아니리]
“아가, 어미가 왔다 정신 차려라.” “밖에 뉘가 오셨소?” “오냐, 에미가 왔다.” “어머니 이 밤중에 웬일이시오?” “오냐. 왔더라 왔어.”
[창조]
“오다니 뉘가 와요? 한양서 편지가 왔소? 날 다려 가려고 가마가 왔소?”
[아니리]
“편지나 가마가 왔으면 오죽이나 좋겄느냐마는 네가 이리 죽어가면서도 방 방 허는 한양 이서방인지 이남방인지 이런 거지가 되어 여기 왔다.”
[창조]
“서방님이 오시다니, 서방님이 오셨거든 나의 손에 잡혀 주오. 아이고 서방님.”
[중모리]
“어제 꿈에 보이던 임을 생시 보기 의외로구나. 향단아 등불 이만큼 밝히어라. 애를 끓어 보이던 임을 생시에나 다시 보자.” 칼머리 들어 저만큼 옮겨 놓고 형장 맞은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아픈 것을 참노라고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뭉구적 뭉구적 나오더니 옥문설주 부여잡고 바드드드득 일어서며 “아이고, 서방님 어찌 이리 더디 왔소? 영천수 맑은 물에 소부 허유와 놀다 왔소? 상산사호 네 노인과 바돌을 뒤다 이제 왔소? 춘수는 만사택이라더니 물이 깊어서 이제 왔소? 와병에 인사절이라 병이 들어 이제 왔소? 책방에 계실 때는 그리도 곱던 얼골, 헌헌장부가 다 되었네.” 춘향 모친 이 거동을 보더니 “아이고, 저렇게 잘되어 온 것을 보고도 대번에 미치고 환장을 허네그려.” “어머니. 웬 말씀이오? 잘되어도 내 낭군, 못 되어도 저의 낭군, 고관대작 내사 싫고 만종록도 나는 싫소. 어머님이 정한 배필 좋고 글코 웬 말씀이오?” 어사또 이 모양을 보더니 옥문 틈으로 손을 넣어 춘향 손길을 부여잡고 “이 애, 춘향아. 내 예 왔다. 부드럽고 곱던 손결 피골이 상접이 되었으니 네가 이게 웬일이냐?” “서방님 나는 내 죄로 이러거니와 귀중허신 서방님이 이 모냥이 웬일이오? 내일 본관 사또 생신 끝에 나를 올리라는 영이 내리거든 칼머리나 들어주고, 나 죽었다 하옵거든 서방님이 싹군인 체 달려들어 나를 업고 물러 나와 우리 둘이 인연 맺던 부용당에 날 뉘이고 내 속적삼 벗겨 내어 세 번 불러 축원허고 향단이난 머리 풀려 내 앞에 곡 시키고 서방님 헌옷 벗어 천금지금으로 덮어주고 나를 묻어주되 정결헌 곳 찾어가서 깊히 파고 나를 묻어주고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 자만 새겨주시면 아무 여한이 없겠네다.” 어사또 기가 막혀, “오냐, 춘향아 우지마라. 내일 날이 밝거드면 상여를 탈지 가마를 탈지 그 일이야 뉘가 알랴마는, 천붕우출혈이라, 솟아날 궁기가 있난 법이니라. 우지를 말라면 우지를 마라.”
[아니리]
떨치고 돌아서니 춘향이,
[창조]
“얘, 향단아 서방님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시게 허여라.”
[아니리]
어사또 기가 막혀 “이 애, 춘향아 오늘 밤만 견디어라, 내일 보자. 어허 참 기맥힌다.” 춘향 모친 옆에 섰다. “야, 춘향아 너 그 말 알아 듣겄느냐? 한양서 여기까지 어어어 얻어 먹고 왔다 그 말이다.” 집으로 돌아올 제 춘향모가 오뉴월 단술 변허듯 허넌디. “자네, 어디로 갈랑가?” “어디로 가? 자네 집으로 가제.” “나, 집 없네.”, “아니 아까 그 집은 뉘집이여?” “그건 오 과수댁 집이시.” “아 과수댁 집이면 더욱 좋지.” “이 애, 향단아. 너는 마나님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내 처소는 객사 동대청 널널헌 집이 내 처소다.” 향단이와 춘향 모친 보낸 후에,
[자진모리]
이튿날 평명 후의 본관의 생신잔치 광한루 차리난디, 매우 대단허구나! 주란화각은 벽공에 솟았난디 구름 같은 차일장막 사면에 둘러치고, 울릉도 왕골 세석, 쌍봉수복, 각색 완자, 홍수지로 곱게 꾸며 십간대청 맞게 펴고, 호피 방석, 화문 보료, 홍단백단, 각색 방석 드문드문 드문드문 놓였으며, 물색 좋은 청사 휘장, 사면에 둘러치고 홍사우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