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명창과 함께 하는 우리소리

언론보도

경인일보 인터뷰 공감

추임새 2016. 10. 12. 07:32

[인터뷰… 공감]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김경아 명창

 

대통령상 큰숙제 끝낸 마음
소리광대 인생은 이제 시작

경인일보 인터뷰 공감

발행일 2016-10-12 제9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이곳저곳에서 '동백 아가씨'를 부르며 '동네 가수'로 노래 실력을 뽐내던 꼬마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23~26일 광주 문예회관 대극장 등에서 열린 '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경아(42) 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얘기다.

수상 이후 매일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김경아 명창을 지난 10일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단아한 한복차림을 떠올렸던 기자의 예상을 깨고 그는 외출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나타났다.

첫인상은 평범한 여성인데 어디에 소리꾼의 내공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리고 있었다.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이제야 졸업했네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마음뿐"이라며

 "4차례 도전 끝에 상을 받게 돼 그동안 도전했던 것만큼 4배로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보수적인 우리나라 국악계에서 '명창'으로 인정받는 방식은 아직 고전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명창의 등용문이라 여겨지는 국내 주요 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다. 그가 '졸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큰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통령상 수상과 동시에 이제 더는 다른 국악제에 도전할 자격도 없어졌다. 막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때부터 그의 꿈은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선희·김연자보다 제가 더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생님 손에 이끌려 다른 반에 공연하러 다니곤 했으니까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꼭 문희옥 같은 유명한 트로트 가수로 커야 한다고 말씀하셨죠."(웃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됐다. 이거구나 싶었다. 우리 가락과 명창의 구성진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 판소리는 내가 부르는 유행가보다 수백 배는 훨씬 더 어려운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할 거면 이처럼 어려운 노래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 '전축'으로 집에서 늘 들어왔던 그 구닥다리 음악이 판소리였다는 것을…. 그는 "13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집에서 전축으로 듣던 그 판소리를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재학시절 소리꾼의 길을 가기로 진로를 결정한 그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 1~2개월의 짧은 판소리 개인지도를 거친 후에 서울국악예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세상 최고인 줄 알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은 예고 입학과 동시에 밑바닥으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소리가 이미 능숙한 어른의 소리 같았다. 아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풋내나는 소리를 했던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친구 중에는 5~6세에 이미 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어른 소리를 내려면 목이 쉬었다 풀리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빠진 집안 형편 때문에 마음 편히 교습도 받을 수 없었다. 학교 연습실은 주말이면 문을 닫아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공부했던 날도 있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공부할 장소가 없어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를 지금의 명창으로 홀로 서게 한 이는 17살 때부터 인연을 맺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인간문화재 고(故) 성우향 명창이다.

"판소리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절대로 혼자서 공부할 수 없어요.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스승이 없이는 제대로 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요."

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 순간에 성우향 명창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3년 전 같은 대회 도전 첫해에 최우수상을 받았을 당시에는 성 명창이 "애썼다.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김 명창은 3명이 오른 결선 무대에서 다른 출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심사위원 7명 만장일치로 대상에 올랐다. 심사위원으로부터는 "정말 상 받을 사람이 받았다. 기분 좋게 심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 순간 스승인 성 명창의 얼굴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번 대통령상 수상이 '소리광대' 인생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동안 춘향가에만 전념했다면, 앞으로 다른 스승을 만나 다른 소리도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의 말은 "내 소리 주고 싶다 받아가거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대회가 끝나고 소리를 물려 주겠다고 나서는 스승도 새로 만나게 됐다.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그는 "'판소리의 세계화' 같은 거창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우선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서 판소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소리를 알면 인생이 지금보다 몇 배는 풍요로워질 거예요. 판소리를 공부하면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 그것도 이 넓은 지구에, 이 작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판소리 사설을 들으면 그림이 그려져요. 장면이 보이고 굉장히 멋있게 음악적으로 표현하죠. 수백 년을 지내오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겨진, 간결하면서도 최고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공부랍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김경아 명창은?

 


-1974년 전라북도 임실 출생
-서울 성수초-경수중-서울국악예고-단국대 음대 국악과-동 대학원 국악과 졸업
-수상내역
▲2016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2013 제21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2013 제14회 전국 숲쟁이 국악경연대회 명인부 종합대상 ▲2004 제14회 KBS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 부문 차상 ▲2004 제31회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2003 제10회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1995 제 5회 서울 청소년 국악경연대회 창악부문 장원 ▲1992 난계 국악경연대회 은상
-주요공연
▲2016 대한민국판소리축제 ▲2015 완창판소리, 김경아 춘향가(김세종제) ▲2015 문학산 정상 개방 고유제 ▲2014 제44회 유파대제전(인천) ▲2013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 ▲2012 한·일월드컵개최 10주년 기념, 일본 가나가와 현립음악당 공연 ▲2011 전주 세계 소리축제 '풍류' 공연 ▲2010 인천국제무용제 초청 개막제 초청 공연 ▲2005 국악음반 박물관 김경아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녹음 수록 ▲1994 한일협정 30주년 기념 일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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